[한마당] 미란 보고서

입력 2025-03-28 00:4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도발’의 종착역은 도대체 어디일까.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최근 월가를 비롯해 전 세계 경제 전문가들이 그 청사진이 담긴 ‘미란 보고서’에 주목한다.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지난해 11월 말 작성한 41쪽짜리 ‘글로벌 무역시스템 재구성 사용자 가이드’라는 보고서로 제목 자체는 무미건조하다. 하지만 내용은 트럼프만큼이나 도발적이다. 관세와 기타 정책을 결합해 새로운 무역 체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2차 대전 이후 브레튼우즈 체제하의 국제금융질서를 뒤엎으려는 구상 때문이다.

그중 핵심은 구조적인 강달러 해소다. 지난 반세기 동안 강세를 유지해온 미국 달러는 미국 수출품을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게 만들었고, 반대로 수입품은 미국 소비자에게 너무 저렴해져 미국의 제조업과 산업 생산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특히 제조업 약화의 원인을 중국 탓으로만 돌리는 데서 벗어나 구조 자체를 바꾸기 위해선 트럼프의 리조트 이름을 딴 ‘마러라고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가상의 협정은 세계 각국에 자국 통화 가치를 끌어올리도록 압박해야 하는데 그 수단으로 동맹국들이 보유한 미국 단기 국채를 100년짜리 초장기 무이자 채권으로 바꾸자는 게 골자다. 미국이 ‘공공재’로서 달러를 제공하고 국채를 팔아 세계의 돈을 빨아들이며 금융 패권을 유지해 온 구조가 더는 지속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맹국들이 그 비용을 분담하는 새로운 체제로 가야 하며 환율·금리·무역 모두를 재조정하겠다는 포석이다. ‘강달러 해소-제조업 부흥-기축통화 유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절묘한 외교·경제 혼합 기술인 셈이다.

그러나 자칫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려다 되레 달러 위상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그래서인지 미란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아이디어가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일 뿐, 구체적인 정책 권고로 보기는 어렵다고 살짝 말꼬리를 흐리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동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