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크라 ‘흑해 휴전’ 합의… ‘대러 제재 해제’ 불씨 남겨

입력 2025-03-26 19:11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중재로 흑해 휴전에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주도로 추진되는 ‘부분 휴전’이 에너지 시설에 이어 해상으로 확대된 것이다. 다만 미국이 러시아에 휴전 조건으로 농업 제재 해제 협력을 약속하면서 서방국들과 갈등의 불씨를 남기게 됐다.

백악관은 25일(현지시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흑해 휴전 합의 관련 자료를 내고 “흑해에서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고 무력 사용을 중단하며 상업 선박을 군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며 “에너지 인프라 공격을 중단하자는 정상 간 합의도 이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고위급 협상단은 지난 23일부터 이틀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표단을 각각 하루씩 만나 부분 휴전을 중재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8일 통화에서 에너지 시설 공격 중단에 합의한 데 이어 이번 협상 결과로 부분 휴전이 한 걸음 더 진전된 것이다.

러시아 크렘린궁과 우크라이나 국방부도 이날 성명에서 “흑해 안전을 보장한다”고 밝혔다. 다만 흑해 휴전의 발효 시점을 놓고서는 입장이 엇갈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합의는 즉시 발효되는 것”이라며 “러시아가 합의를 깨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기 지원과 (대러시아) 제재를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크렘린궁은 “농산물·비료 수출 제재 해제가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악관은 양국과의 합의 내용을 별건의 브리핑 자료로 공개했는데, 러시아에 대해선 ‘미국은 러시아의 농산물·비료 수출을 위한 세계 시장 접근성을 회복시키고, 해상 보험 비용을 낮추기 위해 항구 및 결제망에 대한 접근성 강화에 도움을 주겠다’는 문구를 추가했다. 이는 우크라이나와의 합의 내용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주도의 대러 제재에서 농업 관련 수출·금융 분야만은 풀어주도록 트럼프 행정부가 협력을 약속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유럽 국가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러시아의 요구를 충족시키면 대러 제재 해제를 위한 첫발을 떼게 된다”며 “러시아 압박을 강화하는 서방의 정책을 번복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젤렌스키는 미·러 간 농업 관련 합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약화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