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항공과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현지에서의 구매·투자 소식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한국이 트럼프 신행정부의 관세 표적으로 떠 오른 ‘무역 적자국’ 중 손꼽히게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이 같은 선제적인 호의 표시가 실제 ‘관세 방어전’에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26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음 달 2일(현지시간)을 상호관세 발표일로 예고하고 각 국가에 대한 구체적인 세율과 조치 내용 등을 준비 중이다. 미국에 대규모 무역 적자를 안겨준 국가들이 주요 표적으로 거론된다. 이들 중 유럽연합(EU)·중국·캐나다는 보복 조치를 발표하면서 강경 대응에 나선 반면 대다수는 미국의 요구대로 대미 투자를 늘리고 무역 장벽을 낮추는 유화 노선을 택하는 분위기다.
한국은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민·관을 아우르는 ‘선제 협력’을 택한 국가다. 대한항공은 지난 21일 보잉과 327억 달러(48조원) 규모의 여객기·엔진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차그룹도 사흘 뒤인 24일 210억 달러(31조원) 규모의 대규모 현지 생산시설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는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과 조선업 분야에서의 협력도 논의하고 있다.
한발 빠르게 알래스카 개발 사업에 참여 의사를 드러낸 일본과 대만의 선제적 투자 행보도 유사하다. 일본 소프트뱅크와 대만 TSMC는 각각 190억 달러, 10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경제적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무역 적자국들이 상대적으로 방산 등 제한적인 분야에서 약소하게 성의를 표시하는 데 그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종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통상안보실장은 “한국, 일본 등이 EU·중국 등 다른 나라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유화적) 액션을 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선제적 유화 정책이 예측 불가의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우호적 고려’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방미 중 상무부와의 면담에서 “상무부 차원의 우호적 고려는 약속하지만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외교부 경제통상대사를 지낸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카드를 이미 넘겨준 상태보다는 갖고 있을 때 협상력이 더 크므로 아쉬운 측면도 있다”라면서 “알래스카 개발 참여 등 남은 카드는 더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