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카카오 본사 사옥인 제주도 스페이스닷원에 마련된 주주총회장에 들어서자 170여개의 좌석에 20명 정도의 주주만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누구의 반대도 없이 모든 안건이 만장일치로 가결되며 주총은 시작한 지 50분 만에 종료됐다.
카카오가 제30기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신규 이사 선임과 주총 개최지 확대 등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번 주총에서는 주가 폭락으로 막대한 손실을 본 개인투자자들을 달래기 위한 자기주식 소각 등 ‘당근책’이 나왔지만 주주들의 성난 목소리를 막지는 못했다. 주총 전후로 포털 사이트 ‘다음’의 분사를 반대하는 노조원들의 집회와 기자회견이 이어지며 사측과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카카오는 이날 주총에서 주주 권리 확대를 위해 크게 두 가지 안건을 내놨다. 우선 카카오는 주가 부양을 위해 자기주식을 대거 소각하기로 했다. 카카오가 카카오M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합병신주로 취득한 자기주식이 대상이다. 총 220만2644주를 소각해 주가 부양에 힘쓰겠다는 계획이다.
주주의 주총 접근성을 확대하기 위해 정관에 ‘주총을 본점 소재지, 경기도 성남시와 그 인접지에서 개최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안건도 가결됐다. 카카오는 2014년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한 이후 매년 주총을 제주도에서 개최했다. 많은 기업이 주주의 의결권을 보장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주총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지만 카카오는 철저히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더해 주주 대신 대리인이 참석할 경우 주주의 인감증명서를 지참하도록 요구해 “사실상 오지 말라는 것이 아니냐”는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인감증명서는 부동산 매매·대출 등에 이용되는 서류로, 타인에게 대여해주기 쉽지 않다. 시가총액 기준 국내 30대 기업 가운데 주총 대리인에게 인감증명서를 요구하는 기업은 카카오를 포함해 3곳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카카오 주총에는 170만명에 달하는 카카오 주주 가운데 참석자가 매년 10~20명에 그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카카오는 “인감증명서 외에도 적법한 위임 수단을 지참한 주주의 입장을 허용했다”고 해명했다.
2021년 17만3000원에 달했던 주가는 꾸준히 하락해 이날 현재 4만2900원에 불과하다. NH투자증권의 ‘NH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카카오 주주의 평균 수익률은 46.71%에 손실 투자자 비율은 96.61%에 달한다. 카카오 주식을 11만원대에 매입했다는 한 주주는 이날 주총에서 정신아 대표를 향해 “임원들은 ‘스톡옵션 먹튀’로 수익을 챙기고 주가 폭락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들이 받고 있다. 이런 행동들이 주주 가치 제고로 이어질 수 있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주총 안건에도 없던 다음 분사 이슈가 주총을 삼켜버리는 모습도 연출됐다. 카카오 노조인 ‘크루유니언’은 이날 오전 8시30분부터 스페이스닷원 앞에서 다음 분사를 규탄하며 집회를 열었다. 서승욱 지회장은 “분사 절차가 다음을 매각하고 정리하려는 수순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며 임금단체협상 일괄 결렬을 선언했다. 사측은 다음 분사에 관한 노조 측 주장을 일축했다. 정 대표는 주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기존 분사 사례와는 성격이 다르고, 매각에 대해서는 현재 전혀 검토되고 있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