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만큼 대우해 드려요… 7등급까지 줄 세우는 VIP클럽

입력 2025-03-27 00:03 수정 2025-03-27 00:03
게티이미지뱅크

유통 산업 전반에 ‘VIP 인플레이션’이 심화하고 있다. 역대급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야구 현장 관람은 선(先)예매를 넘어 ‘선선선 예매권’까지 등장했다. 백화점·여행·홈쇼핑업계에서도 VIP 등급을 세분화하며 소비계층을 구분하고 있다. 사실상 ‘유료 옵션’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소비계층화를 공고히하고 실질적으로는 서비스 비용을 높이는 셈이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25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현재 국내 프로야구 10개 구단 모두 ‘선예매권’을 주는 유료 회원제를 운영하고 있다. 회원가입 시 내는 비용에 따라 30분~1시간 정도 예매 시간에 차등을 둔다. 최근에는 ‘선선예매’를 도입한 구단도 등장했다. KT 위즈는 차등에 차등에 차등까지 혜택을 주는 ‘선선선선예매’를 시작해 뭇매를 맞고 있다. LG 트윈스는 선예매가 포함된 유료 멤버십 가격을 기존 2만원에서 10만원으로 다섯 배나 인상했다. 선예매 구매 횟수에 제한이 없어서 회원이 아니면 표를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과열된 ‘티켓 계급제’는 암표 거래도 부추기고 있다. 중고거래 플랫폼 등에서 선예매로 인기 좌석을 선점한 후 웃돈을 받고 되파는 사례가 늘고 있다. 4만5000원짜리 좌석이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35만원에 팔린 사례도 있다.


VIP 인플레이션은 유통업계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VIP 등급을 기존 6단계에서 최상위 레벨인 ‘블랙 다이아몬드’를 신설했다. 골드, 레드 등 일부 중상위 등급의 진입 기준도 상향됐다.

현대백화점도 ‘프레스티지’ 등급을 새로 도입하고, 일부 등급의 연간 구매 기준을 1000만~3000만원가량 조정했다. 그러나 가격 기준이 올라간 데 비해 일부 혜택은 오히려 줄었다. VIP 멤버십에 제공되던 명품 마일리지 사용 브랜드 수는 기존 80여개에서 12개로 축소됐고, ‘그린 등급’에 제공되던 ‘카페H’ 음료 서비스 횟수도 줄었다.

현대홈쇼핑은 고액 구매자만 참여할 수 있는 라이브 커머스 ‘시크릿 쇼라’와 ‘퍼스널 쇼라’를 론칭했다. 두 채널 모두 최근 6개월간 100만원 이상 구매한 경우만 사전 초대장을 받을 수 있다. 에르메스 접시 등을 판매했고 다음 달에는 골드바가 등장할 예정이다.

여행업계에서는 모두투어가 최근 1인당 수천만 원대의 ‘하이클래스 패키지’를 선보였다. 고가 여행 상품 비중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5% 미만이었으나 현재 20~25% 수준까지 늘었다.

VIP 혜택은 제한된 인원에만 주어지므로 소비자에게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는 기분을 들게 한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찮다. VIP가 세분화할수록 더 많은 돈을 써야 기존의 혜택도 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뀐다. 소비를 늘리지 않는 한 서비스 품질은 낮아진다는 의미다.

소비 계층화와 상대적 박탈감도 문제로 지적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서비스를 크게 개선하지 않으면서 등급만 다양해지면 혜택은 사실상 줄어드는 셈”이라며 “구매력에 따른 선별 혜택을 일상화한다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