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카이스트 17대 총장으로 취임한 이광형 교수는 “성공률 80%가 넘는 연구 과제는 지원하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선언을 했다. 연구자들이 안전한 목표에만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과 제도적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해 6월 카이스트 실패연구소도 이런 철학의 연장선 속에 설립됐다. 세상에 없는 것에 도전하자면 반드시 실패의 위험이 따른다. 연구소는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분석해, 개인과 사회가 이를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목표를 갖고 출범했다. 책은 실패연구소가 3년 넘는 기간 동안 ‘실패에서 배우는 법’을 고민하고 연구하고 실험한 결과를 담았다.
실패연구소 초반에는 ‘실패에 대한 인식 개선’이라는 목표로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연구와 세미나, 공모전,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가장 공들여 기획한 프로그램은 ‘실패세미나’였다고 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거둔 리더들을 초청해 실패 경험과 교훈을 들어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세미나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성공한 사람의 실패담이 아니라 ‘진짜’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요청을 자주 받았다. 한 학생은 “실패는 성공했다는 알리바이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요”라고 반문했다. ‘실패는 과정일 뿐이다’, ‘실패해도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강연자와 ‘실패를 피하는 법’, ‘실패에서 빨리 벗어나는 법’을 배우길 기대하는 청중 사이에는 항상 거리가 있었다.
이런 간극이 발생한 이유는 실패연구소가 진행한 ‘도전과 실패에 관한 대국민 인식 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실패가 ‘성공에 도움이 된다’에 동의한 사람(73.5%)은 실패가 ‘성공의 장애물’(26.5%)이라고 응답한 사람의 두 배를 넘었다. 하지만 실패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묻는 말에는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의 77.2%는 ‘한국 사회가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사회’라고 답했고, ‘한국 사회는 한 번 실패하면 낙오자로 인식된다’고 응답한 사람도 58.2%였다. 특히 한국 사회 구성원이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지원’하기(35.6%)보다 ‘무모하다고 여기고 무시’하는 경향(64.4%)을 보이고, ‘실패를 성장과 학습의 기회로’ 보기(35.1%)보다 ‘부끄럽게 여기고 비난’(64.9%)한다고 보는 인식이 훨씬 우세했다. ‘나’는 실패가 쓸모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회’는 실패를 받아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실패할 기회를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패를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말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실패연구소는 초심으로 돌아갔다. 우선 개개인의 실패를 들여다보면서 그 속에서 실마리를 찾기로 했다. 실패 경험을 수집하고 공유하기 위해 찾은 방법이 ‘포토 보이스’였다. 특정 주제에 대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매개로 사람들의 의견을 끌어내는 질적인 연구 방법이다. 카이스트 내 다양한 구성원 30여명이 일상에서 ‘실패’ 혹은 ‘실패감’이 떠오르는 장면을 사진에 담아 제출하는 과제를 받았다. 특징적인 것은 많은 사람들이 실제 실패를 경험한다기보다는 막연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포켓몬 스티커 뽑기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장면을 ‘실패’ 사진으로 올린 한 학생은 “삶에 실패가 별로 없었지만 늘 실패가 일어날까 봐 무서웠고, 피하고 싶었다”면서 “스티커 뽑기 실패처럼 사소한 실패가 일상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어떤 실패든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저자들은 “막연한 ‘실패할 것 같은 느낌’이 실제 실패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고정관념이자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 다른 특징은 실패는 ‘주관적 판단’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학생은 소문난 식당에서 추천받은 솥밥을 한입 먹는 순간, “오늘 대성공”이라고 속으로 외쳤지만, 바로 친구가 선택한 다른 솥밥을 먹어보자 “조금 전의 성공이 순식간에 실패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친구 밥이 훨씬 맛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실패라고 부르는 경험들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상대적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면서 “성공과 실패의 경계는 생각보다 모호하며, 우리의 인식과 해석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경험이 실패인지 아닌지, 내가 실패할지 아닐지보다, 지나간 경험을 어떻게 이해할지, 그 경험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배웠는지, 어떤 의미를 발견했는지를 더 중요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실패연구소는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실패가 배움을 통해 성공으로 이르는 ‘실패 학습 체계’를 제안한다. ①자신의 실패를 스스로 관찰하고 포착하기. ②실패 경험과 그로부터 느낀 것을 구체적인 언어로 기록하기. ③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재구성하기. ④심리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경험 나누기 등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패라는 현상 자체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다. 누구나 실패를 겪지만 실패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태도를 다르게 만드는 요인은 목표와 비전이 있느냐 여부다. 비전이 명확한 사람은 실패 속에서도 배움을 찾고 다음 도전을 발판으로 삼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결론은 이렇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음을 안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명확한 비전이 있다면 실패는 그 비전을 향해 가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 세·줄·평 ★ ★ ★
·실패가 진짜 성공의 어머니가 되는 법
·실패가 아니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문제
·청년이여 비전을 가져라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