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중국이 무비자 시범정책 대상에 한국을 포함시켰다. 15일간 무비자 혜택이 주어졌다. 올해부터 내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되지만 관광이나 친지 방문, 비즈니스를 위한 단기 방문을 하려는 이들에게는 반가운 조치였음에 틀림없다.
여기에 화답이라도 하듯 지난 20일 한국도 올해 3·4분기 중 중국인 단체관광객(유커)에 대해 한시적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방한관광 시장 글로벌 성장전략’을 내놨다. 오는 11월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중국인 관광객 유치와 한·중 관계 개선 등을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된다.
약 10년 전만 해도 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찾았다. 그들의 꼴불견 행태도 부지기수였다. 쓰레기를 버리고 공공장소에서 배변을 보는가 하면 유물에 올라 사진을 찍는 등 비문명적 행동이 연일 이슈가 됐다. 중국 정부가 관광지나 비행기에서 관련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한 자국민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집중 관리하는 규정을 만들 정도였다. 지나친 싹쓸이 쇼핑도 심심찮게 도마 위에 올랐지만 ‘큰손’ 덕분에 면세점 등에는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한 것도 사실이다. 이후 한·중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중국인의 방한이 급감했다. 다소 회복을 한 지난해에도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460여만명으로, 국내 유입 관광국가 중 1위를 차지했지만 코로나19 이전 602만명 대비 76% 수준에 그쳤다. 중국인 관광객에 기대 호황기를 누렸던 관련업계의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한때 세계 면세시장 1위, 글로벌 점유율 25.6%에 달했던 면세점은 구조조정 등을 시행하며 어두운 시기를 보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미운 오리 새끼’가 됐다.
중국 단체관광객에 대한 한시 비자 면제 발표에 여행업계와 면세업계 등이 가장 반겼다. 면세업계에선 비즈니스 목적으로 방한한 단체객의 1인당 구매액은 일반 단체관광객 대비 3~4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100만명 증가할 때마다 국내총생산(GDP)이 0.08% 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한국은행은 추산하고 있다. 한국 관광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중국에서 개최한 ‘K관광 세일즈’가 성황을 이뤘다. ‘K관광 로드쇼’가 지난 6일 광저우에 이어 25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데 이어 27일 상하이에서 예정돼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중국인들의 관광 트렌드가 바뀐 것이 눈에 띄었다. 면세점 등에서 ‘싹쓸이 쇼핑’을 하는 대신 맛집·핫플레이스를 찾는 싼커(중국 개별관광객)와 체험을 중시하는 관광객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에 맞춰 중국 ‘K관광 로드쇼’에서도 건강검진 등 의료·뷰티 체험 여행, 반려동물 동반 여행, 도보 산악 여행 등 이색 테마형 방한 상품이 선보이고 미식, 공연 등 체험과 생활에 기반한 새로운 관광 콘텐츠가 소개됐다.
걱정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중국 내수시장 부진이 이어지고 있어 예전만큼의 소비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있다. 단순히 K콘텐츠에만 기댄다면 그들의 소비를 끌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중국인의 변화된 관광 성향을 철저히 분석한 ‘맞춤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그동안 중국인 무비자 체류 혜택을 독점적으로 누려왔던 제주도는 더욱 분발해야 한다. 비자 없이도 국내 어디든 여행할 수 있게 된 만큼 제주도를 찾던 중국인들이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를 찾아 떠나는 여행 수요가 높아질 게 뻔하다. 중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나름의 전략과 전술을 마련해야 한다.
남호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