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와 통상·경제 정책
임의성, 즉흥성, 불확실성
예상 크게 뛰어넘어
미국은 전지전능하다는
시대착오적 교만이 배경
소프트파워 용어 창시한
나이 교수 “미 연성권력 끝났다”
재선 나갈 수 없는 트럼프
폭주 멈추지 않을 가능성
임의성, 즉흥성, 불확실성
예상 크게 뛰어넘어
미국은 전지전능하다는
시대착오적 교만이 배경
소프트파워 용어 창시한
나이 교수 “미 연성권력 끝났다”
재선 나갈 수 없는 트럼프
폭주 멈추지 않을 가능성
세어 보니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지 두 달여밖에 안 됐다. 하지만 임기가 절반 정도 지났을 즈음에나 느낄 법한 답답함과 피로감은 왜일까. 아마 매일같이 펼쳐지는 ‘트럼프 롤러코스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1년 전 ‘더 독해진 트럼프의 귀환’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트럼프 2기’는 1기와는 (나쁜 의미로) 크게 다를 것 같다고 전망한 바 있다.
그럼에도 미국 대통령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적을 편들고 동맹을 공격할 줄은 몰랐다. 지난달 24일 유엔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미국이 러시아, 헝가리, 북한, 이란 등과 함께 반대표를 던진 것은 ‘전도된 미국’의 상징이었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이 우크라이나에 있다는 트럼프의 발언을 “역겹다(disgusting)”고 했다. 트럼프 1기 때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은 “미국의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적 편에 선다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믿을 수 없고, 상상하기도 힘든, 개탄스러운’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어~어’ 하며 놀라는 게 첫 반응일 것이다. 다음에는 ‘트럼프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궁금하게 마련이다. 여기에는 세계 제1강대국 대통령의 이런 행동의 배경에 분명히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전략’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속내를 추정하려 아무리 애써도 이 행동들이 미국 국익에 도움된다는 단서가 잡히지 않는다는 게 많은 이들이 느끼는 좌절과 피로감의 근원이다.
개인적으로 이 지점에서 가장 신뢰가 가는 건 트럼프를 직접 겪은 볼턴의 설명이다. 그는 궁리하고 ‘왜 그럴까’ 머리 쓸 필요가 결코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트럼프의 마음은 뒤죽박죽, 엉망진창(full of mush)이니까.
트럼프에게는 미 정부나 의회 관계자들이 이해하는 의미로서의 ‘정책’이 없다. 그에게는 자신에게 좋은 게 미국에도 좋은 것이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이 자신의 ‘친구’이기에 러시아는 미국에도 좋은 나라다. 그의 접근 방식은 개인적, 임의적, 때와 상황 따라 제각각으로 요약된다. 트럼프에게 장기 계획이나 전략이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관세를 비롯한 경제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시장 참여자들을 가장 아연케 하는 건 관세정책을 꿰는 일관된 원칙이나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관세율, 대상국, 대상 품목, 시행 시기 등이 볼턴의 말대로 뒤죽박죽이다. 4월 2일 국가별 관세율을 발표한다고 했지만 또 어떻게 변할지는 가봐야 한다. 이후에도 트럼프의 기분, 트럼프의 해당 국가 지도자에 대한 호감 여부 등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이런 임의성, 즉흥성, 불확실성은 경제에 최악이다. 이런 안갯속에서는 경제 주체들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다. 그나마 월가로부터 기대를 받는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도 도긴개긴이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 때 오른 식료품 가격을 취임 첫날부터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베센트는 관세 불확실성 등으로 물가가 불안해지자 최근 “싸게 물품을 살 수 있다는 게 아메리칸 드림의 핵심이 아니다”고 말을 바꿨다. 베센트를 비롯해 트럼프 행정부 관료들도 ‘계획’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트럼프와 핵심 지지자들이 벌이는 이러한 비정상과 탈원칙의 배경에는 교만(hubris)이 있다. 미국이 모든 카드를 쥐고 있고 미국이 마음먹으면 어떤 일도 가능하다는 믿음. 하지만 정말 그럴까. 미국에 질린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등 우방들은 이미 독자 재무장 등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우방들도 더 이상 미국의 변덕을 감내하지 않을 것이다. 연성권력(소프트파워)이란 용어를 창안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종말에 처했다고 썼다. 소프트파워가 무너지는데 경제력, 군사력 등 하드파워는 유지될까.
미국인들이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힘을 실어줘 트럼프의 폭주에 제동을 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더 이상 재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트럼프가 개의치 않고 폭주를 계속할 가능성도 매우 크다. 트럼프 롤러코스터가 4년간 이어진다면 미국은 온전할까.
배병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