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7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방사능 농도가 높은 폐기물을 영구 처분할 수 있는 처분시설(방폐장) 건설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고준위 방폐장은 원자력발전으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 등 높은 방사능과 열을 가진 폐기물을 처분하는 시설이다. 일반적으로 지하 수백m 깊이에 공학적·천연 방벽을 갖춘 형태로 건설된다. 이러한 방폐장은 방사성물질의 유출을 방지하고 장기적인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수적인 시설이다.
방폐장 건설에 앞서 처분의 안전성을 연구하고 기술의 현장 적용성을 검증하기 위해 건설되는 것이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이다. URL에서는 실제 방폐장과 유사한 환경에서 처분 기술을 개발·검증하는 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스웨덴, 핀란드, 스위스 등 방폐장을 계획하거나 건설 중인 국가들도 URL을 먼저 구축해 관련 연구를 진행한다. 특히 스웨덴은 1986년부터 부지 조사를 시작해 1995년 ‘Aspo HRL’을 완공했으며, 현재 전 세계 방폐장 연구의 중심지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연구용 URL 부지를 선정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 공모를 진행했다. 이후 암종 적합성, 부지면적 및 부지 적정성, 재해 영향, 주민 수용성 등을 평가한 결과 강원도 태백시가 최종 부지로 선정됐다. 이에 따라 올해 예비타당성조사가 진행되며, 2026년 부지 조사 후 기본·실시 설계를 거쳐 2032년까지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총 5138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며, 국내 연구기관과 대학이 오랜 기간 개발해온 방폐물 처분 기술이 현장에서 검증될 예정이다.
지질 및 지질공학 분야에서도 연구용 URL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의 지질은 오랜 시간 여러 차례 조산운동과 화성·변성작용을 거치며 복잡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지 조사와 설계, 운영 과정에서 상당한 불확실성과 기술적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지질 및 지반 조사가 필수적이며, 다양한 기술적 접근과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축적되는 기술과 경험은 향후 방폐장 건설과 운영의 안전성을 높이는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연구용 URL은 단순 연구 공간이 아니라 안전한 방폐장 건설을 위한 필수적인 검증 단계다. 방폐장 건설이 수십년 걸리는 대규모 국가사업인 만큼 연구용 시설에서 충분한 검증과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통해 방폐장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고,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기술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연구용 URL의 성공적인 건설 및 운영은 우리나라의 방사성폐기물 관리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며, 향후 방폐장 건설과 운영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혁진 대한지질공학회 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