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은둔 청소년 70%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

입력 2025-03-26 00:47

A군은 중학교 입학 직후 등교를 거부하고 방에 틀어박혔다.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은둔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주로 방안 텐트에 머물며 2년 가까이 스스로를 가뒀다. 지난해 지역 청소년 지원센터에서 A군을 발굴해 꾸준히 상담을 진행하고 나서야 A군은 용기를 내 세상과 소통하고 내일을 꿈꿀 수 있었다.

정부가 A군 같은 고립·은둔 청소년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대규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10명 중 7명은 현재 상태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립·은둔을 시작한 이유는 대인관계 어려움이 가장 컸다. 대부분 심리·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지만 가족들은 이런 문제를 모르거나 큰 문제가 아니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조사는 정부가 처음 시행한 전국 단위 실태조사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6~8월 전국의 9~24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1차 온라인 설문을 진행했고, 1만9160명이 조사에 응했다. 이중 고립 청소년으로 판별된 응답자는 2412명(12.6%), 은둔 청소년은 3072명(16.0%)이었다. 고립·은둔 청소년 중 2차 본조사에 응한 최종 응답자는 2139명이다. ‘고립’은 외출 빈도가 매우 적고 긴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는 상태, ‘은둔’은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고립·은둔을 시작한 시기는 ‘18세 이하’가 72.3%로 가장 많았다. 고립·은둔 이유(복수응답)는 ‘친구 등 대인관계 어려움’이 65.5%로 가장 높았다. 그외 ‘공부/학업 관련 어려움(48.1%)’ ‘진로/직업관련(36.8%)’ 순이었다. 응답자의 42.4%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 상태였다.

삶의 만족도는 4.76점(10점 만점)으로 일반 청소년(7.35점)과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고립·은둔 기간은 ‘2년 이상 3년 미만’이 17.1%로 가장 많았고 3년 이상도 15.4%에 달했다. 최근 7일 내 감정을 묻자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된다(68.8%)’거나 ‘희망이 없다(63.1%)’ 등의 답변이 높게 나타났다. 과거에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다는 응답도 62.5%였다.

71.1%는 현재 생활을 벗어나고 싶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변화를 시도한 경우도 절반을 넘는 55.8%였다. 그러나 ‘힘들고 지쳐서(30.7%)’ 등의 이유로 39.7%는 다시 은둔 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들의 문제 인식은 낮았다. 29.6%가 고립·은둔 생활을 몰랐고, 27.2%는 큰 문제라 생각하지 않았다. 관심이 없다는 답변도 9.4%였다.

조사를 총괄한 최홍일 박사는 “가족이 자녀의 바깥 생활을 정확히 알지 못하다보니 은둔 생활이 길어지지 않으면 고립 상태라 단정짓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선제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을 발굴하고 지원 사업을 전국 단위로 확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