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은 따뜻해 왔다고는 하지만 세차게 부는 봄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럼에도 한해를 기다렸던 봄꽃들이 추위를 뚫고 하나둘 세상에 나오고 있다. 봄 야생화 명소 중 최근 떠오르는 곳이 전북 군산의 고군산군도이다. 과거 배를 타고 족히 2~3시간은 걸렸을 만한 이 섬들이 2018년 다리로 연결되면서 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다.
봄을 맞은 3월 고군산군도에 속하는 신시도 대각산으로 향하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 산자고(山慈姑)가 주인공이다. ‘산에서 자라는 자고’라는 뜻의 이름이다. 독특한 명칭은 비늘줄기가 물가에서 자라는 소귀나물류(한자명 자고)의 비늘줄기와 닮은 특징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학명은 ‘Tulipa edulis (Miq.) Baker’다. 속명 툴리파(Tulipa)는 페르시아의 고어 tulipan에서 유래한 것으로 꽃 모양이 ‘두건을 닮았다’는 뜻이고, 종명 에둘리스(edulis)는 라틴어로 ‘먹을 수 있다’는 의미다. 영어명은 edible tulip(에더블 튤립), 즉 ‘먹을 수 있는 튤립’이다. 꽃말은 ‘봄처녀’다.
산자고는 백합과 여러해살이풀로, 중부 이남의 산과 들의 양지쪽 비옥한 토양에서 자생한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백합과 식물 중 유일한 튤립종이다. 알록달록한 무릇이란 의미로 옛날에는 ‘까치무릇’이라고 불렸다.
키는 15~30㎝이고 길이 3~4㎝의 넓은 난형의 흑갈색 비늘줄기가 있다. 뿌리에서 나는 잎은 2개이고 꽃잎은 6장이다. 꽃 안쪽은 흰색이고 바깥쪽에는 자주색 줄무늬가 있다. 주황색 꽃밥이 있는 수술 6개 가운데 3개는 길고 3개는 짧다. 암술은 한 개다. 얼레지처럼 사랑의 온도가 돼야 꽃잎이 열린다. 펼쳐진 꽃잎은 별 모양이다. 밤에는 꽃잎을 닫는다.
한자 이름에서 ‘산에 있는 자애로운 시어머니’가 떠오른다. 산림청이 우리나라 식물명의 유래를 설명하면서 소개한 이야기가 있다. 먼 옛날 산골 가난한 집에서 어렵게 들인 며느리가 등창이 나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한다. 한날 시어머니가 뒷산에서 별처럼 생긴 작은 꽃을 피운 가냘픈 식물을 발견하고 뿌리를 캐어 짓이겨 등창에 발랐더니 감쪽같이 나았다고 한다.
산자고는 실제 약재로도 쓰인다. 혈액순환 촉진과 뭉친 것을 풀어 주는 효능이 있어 타박상, 임파선염, 종기 치료 등에 쓰인다.
산자고는 우리나라의 전역에 비교적 흔히 분포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대각산을 찾는 것은 탁 트인 시원한 풍광과 함께할 수 있어서다. 대각산 전망대 주변 바위에 자세히 살펴보면 쉽게 볼 수 있다. 꽃의 색이 선명하고 펼쳐진 꽃무리가 옹골지다. 곡선이 어우러진 자태와 화사한 색채가 매혹적이다. 잡초 사이에서 꽃을 피운 모습이 봄의 역동과 소생의 기쁨을 전해준다. 벼랑 위 산자고 너머 바다 위에 고군산군도의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 등이 그림 같이 줄지어 떠 있다.
신시도에서 고군산대교를 건너면 무녀도(巫女島)다. 하늘에서 보면 조각조각 난 섬들이 연결된 모습이 마치 무녀가 춤을 추는 것 같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고군산대교를 건너자마자 좌측 내리막길을 따라가면 무녀1구다. 초입 바다 가운데 작은 섬이 ‘쥐똥섬’이다. 바로 코앞이지만 썰물 때 ‘모세의 기적’(바다 갈라짐)이 있어야 길이 열리면서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마을 끝까지 가면 해안 절벽 끝에 펜션이 나온다. 그 왼쪽에 있는 작은 섬은 ‘똥섬’이다. 약 9000만년 전 화산 활동이 만들어낸 거대한 작품이 기다린다. 대표가 해식동굴이다. 이곳도 썰물 때만 접근할 수 있다. 인생샷을 건지려는 이들이 알음알음 찾고 있다.
무녀1구 갯벌체험장 진입로에 ‘엄바위’ 안내판이 있다. 마을 끝에 있는 거대한 기암괴석이다. 오랜 시간 해풍과 파도에 깎인 바위가 일품이다.
여행메모
도보·자전거·스쿠터로 섬 매력 만끽
이국적 카페·호떡… 필수 이색 즐길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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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도 대각산 정상은 몽돌해변에서 오른다. 주차할 수 있는 공간과 화장실이 있다. 대각산은 날카로운 돌이 많아 오르내릴 때 조심해야 한다. 정상 전망대는 안전 문제로 폐쇄돼 오를 수 없다. 바위 위에서는 추락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인근에 국립신시도자연휴양림이 있다.
무녀도는 차로 20분이면 둘러볼 수 있다. 하루 정도 머물며 도보로 해안도로를 둘러보거나 자전거나 스쿠터를 빌려 타고 천천히 둘러보면 섬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무녀도 쥐똥섬이나 똥섬 해식동굴에는 물이 빠져야 갈 수 있다. 국립해양조사원에서 간조(썰물) 시간을 알 수 있다. 똥섬으로 이어진 탐방로는 노후화돼 입구를 막아놓았다. 탐방로 아래 해안을 따라가면 닿을 수 있다.
젊은 층 사이에 소문난 ‘무녀도 핫플’로 이국적인 버스를 갖춘 카페와 포장마차 등이 있다. 장자도의 주전부리는 호떡이다. 젊은 세대 입맛에 맞춘 꿀호떡이나 크림치즈 호떡 등을 판다.
군산=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