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밝힌 210억 달러(약 31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들여다보면 ‘미국 현지 공급망’ 강화로 요약된다. 미국이 원하는 제조업 재건에도 기여하면서 미국 내 공급망을 탄탄하게 만들어 관세, 환율 등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겠다는 전략도 담겼다. 미국 현지화는 국내 연관 산업 성장과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4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 밝힌 투자금 210억 달러는 크게 3가지 부문에 투입된다. 자동차 부문(86억 달러), 부품·물류·철강 부문(61억 달러), 미래산업과 에너지 부문(63억 달러)이다. 각각 다른 분야에 투자하는 것 같지만 완성차 공급망의 순환을 이루는 지점에 집중 투자가 이뤄지는 게 보인다.
먼저 에너지 분야의 투자다. 현대건설은 올해 말 미국 미시간주에 소형모듈원전(SMR) 착공을 추진하고,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텍사스주 태양광발전소 사업권을 인수했다. 정 회장은 그룹 차원에서 30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를 구입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미국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핵심 부품도 미국에서 만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루이지애나주의 전기로 제철소 건설 추진은 ‘고품질 자동차강판 공급 현지화’를 가능하게 한다. 25% 철강 관세에 대한 부담도 줄일 수 있다. 270만t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는 대외 리스크 대응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또 견고한 철강 수요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철강과 부품에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미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현지 공급은 완성차 제조로 이어지게 된다. 이번 투자로 현대차그룹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의 생산 능력을 30만대에서 50만대로 늘린다. 이로써 현대차그룹은 연간 생산 규모가 120만대로 확대된다. 현재는 현대차 앨라배마공장(36만대), 기아 조지아공장(34만대), HMGMA(30만대) 등 100만대 규모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현지 공급망이 탄탄해지는 만큼 트럼프 행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관세 부과 등 정책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됐다. 하나의 생산 라인으로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 생산이 가능한 ‘혼류 생산’ 체계를 활용해 현지 상황에 맞춤형 대응도 수월해진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에서 성장을 거듭하며 지난해 미국 판매량 기준 글로벌 자동차그룹 4위에 올랐다. 미국 시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투자가 한국 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현철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부원장은 “부품을 현지에서 만들어도 완성차 업체의 다양한 핵심 시스템과 기술은 국내에서 소화하기 때문에 국내 산업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허경구 한명오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