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3월 두 명의 미국인 선교사가 조선의 호남 땅을 밟았다. 목사 윌리엄 전킨(전위렴·1865~1908)과 의사 알렉산드로 D 드루(유대모·1859~1926)였다. 이들은 인천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열흘 넘는 항해 끝에 전북 군산의 한 포구에 도착했다. 24일 군산에 도착하자 차갑지도 다정하지도 않은 서풍이 순례 일행을 맞이했다. 황사를 품은 바닷바람 속에 봄이 또렷했다. 130년 전과 오가는 방식은 달랐지만 매화가 피고 목련이 뒤를 잇는 시기는 같았다.
선교사들이 도착했다는 포구를 뒤로하고 군산 수덕산에 올랐다. 산자락에 초가집 두 채가 있었다.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진 초가집을 선교사들은 50달러, 당시 한 가마니에 가득 담긴 엽전으로 사들였다. 한 채는 교회, 한 채는 진료소로 썼다. 군산 지역 기독교 선교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선교사들의 수덕산 생활은 길지 않았다. 1899년 군산항이 개항하면서 일대가 외국인이 자유롭게 통상하고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는 특구 ‘조계지’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조선인을 상대로 선교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선교사들은 수덕산을 떠나 궁멀(현 구암동)로 자리를 옮긴다. 그곳에 호남 최초의 선교 기지를 조성한다. 새 터전은 전형적인 ‘선교의 삼각 구도’로 형성됐다. 교회와 학교와 병원. 전킨 선교사는 1903년 학교를 세우고 신약성경 요한복음의 ‘영생’과 구약성경 창세기의 ‘빛’에서 착안해 영명(永明)이란 이름을 붙인다.
영명학교는 1919년 3월, 한강 이남 최초의 만세운동인 ‘3·5 만세운동’의 진원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당시 교사였던 박연세가 서울에서 독립선언서를 가져와 운동을 주도했다. 장날이던 3월 6일을 거사일로 삼았으나 일제 경찰에 의해 하루 앞서 발각된다. 3월 5일 박 교사가 체포되자 분노한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선언서와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 물결은 인근 학교에까지 번졌다. 영명학교 운동장에 500여명이 모였다. 이정우 군산제일고 교장은 “5일 하루에 90명이 체포됐다. 주민들이 가세하면서 만세운동이 호남 지역 전체로 퍼졌다”고 설명했다. 1940년 영명학교는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자진 폐교한다. 복교 뒤 재정난을 겪던 학교를 1975년 기업가 고판남씨가 인수하고 이름을 군산제일중·고등학교로 바꾼다. 군산제일고 26회 졸업생인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는 이날 현장에 동행해 “성경이 가르친 인권과 사랑의 가치가 학생들 스스로 민족운동에 나서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라며 “군산 주민들에게 근대교육과 독립운동을 가져다준 모교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복음의 씨앗이 꽃을 피우기까지는 선교사들의 피와 눈물이 있었다. 전킨 선교사는 군산에서 세 명의 어린 아들을 잃었다. 풍토병이었다. 그도 장티푸스에 걸려 43세에 숨을 거뒀다. 잊혔던 전킨의 이름을 되살린 것은 ‘전킨기념사업회’다. 기념사업회 추진위원장인 서종표 군산중동교회 목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선교사님들은 조선에 오시면서 세 가지를 다짐했어요. 모든 걸 포기한다. 희생한다. 그리고 이 땅에 묻힌다. 전국에 6000명의 선교사와 가족들이 왔고 그중 600명이 이 땅에 묻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들을 기억하지도 않아요. 추모예배조차 드물었어요. 너무 속상했고 화가 나서 이름만이라도 남기자고 결심했습니다.”
기념사업회는 전킨과 드루 선교사가 처음 사역했던 곳을 기념하는 비석을 수덕산에, 선교사들의 묘역을 궁멀에 조성했다. 선교사 묘역에는 전킨 선교사 부부와 세 아들, 드루 선교사 부부와 윌리엄 해리슨 선교사 부부, 윌리엄 불 선교사 부부의 묘가 있다. 전킨기념사업회는 미국 선교사들의 고향에서 직접 흙을 퍼다가 유골함에 담아 왔다.
한국의 근대문화유산을 돌아보는 이번 탐방은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대표회장 김종혁 목사)이 주최하고 한국기독교140주년기념대회(상임대회장 소강석 목사)가 주관했다. 김종혁 대표회장은 “한국 기독교는 대한민국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하며 구시대의 제도와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는 데 이바지했다”며 “신앙이 시대적 도전 앞에 어떻게 실천됐는지 되돌아보기 위해 이번 탐방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군산=글·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