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소풍이 악몽 되지 않으려면

입력 2025-03-26 00:37 수정 2025-03-26 07:20

새봄이 오고 새 학기가 시작됐지만 교정에는 소풍의 설렘을 찾기 어려워졌다. 올해 다수의 교사와 학교들이 현장체험학습을 거부하거나 보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논란은 2022년 11월 강원도 속초의 한 테마파크에서 벌어진 초등학생 사망사고에서 시작됐다. 버스에서 내린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후진하던 차량에 치여 숨졌는데, 법원은 지난 2월 담임교사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보고 금고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교사가 학생을 18~30m 인솔해 이동하면서 단 한 번만 뒤돌아본 점 등을 들어 보호감독의무 위반으로 판단했다.

교사들은 현실을 외면한 판결이라며 아우성이다. 그 넓고 혼잡한 장소에서 단 한 명의 교사가 수십 명의 학생을 어떻게 완벽히 통제하느냐는 것이다. 교사 커뮤니티에는 “응급환자를 살리려다 실패했다고 의사를 처벌하는 꼴”이라거나 “소풍은 형사처벌의 무덤”이라는 한탄이 이어졌다. 실제로 체험학습으로 간 놀이공원에서 아이가 잠시 길을 잃었다는 이유로 학부모가 학교를 찾아와 고소 운운하며 교사를 몰아붙인 사례가 허다하다고 하니 현장학습은 이제 생생한 교육의 현장이 아닌 ‘전쟁터’가 됐다.

그러니 교사들은 현장학습을 거부하고 있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이 초중고 교사 9692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81%가 “올해 현장학습을 전면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수도권 교육감들은 최근 간담회에서 “교사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역시 현장학습의 교육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선 교사에 대한 법적 보호와 책임 기준 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부모단체는 다른 입장이다. 현장학습은 또래와의 관계 형성과 세상과의 접점을 배우는 중요한 교육 과정이니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공교육이 이를 포기하면 사교육으로 떠넘겨져 교육 불평등이 심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장학습은 학생의 사회성·창의성 함양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교육활동인 만큼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방안을 찾는 것이 핵심이다.

교사들의 고충을 줄이려는 노력이 없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국회는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학교안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교사가 필요한 안전조치를 다 했을 경우 사고에 대한 민형사 책임을 면제하고 보조 인력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교사들을 안심시키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필요한 안전조치’라는 표현이 구체적이지 않아 해석에 따라 교사에게 다시 책임이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보조 인력 배치 역시 아직 제도적 실효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교사들이 진짜 원하는 건 법률 문구가 아니라 구조적 변화다. 안전관리 책임을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 전문기관이 분담하고 교사는 본연의 역할인 학생 지도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학습을 떠나는 교사에게 차량 타이어 마모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운전자의 음주 여부까지 점검하라는 식의 요구를 당연하게 여기는 현실에서는 새 법안이 나온들 바뀌는 건 없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소풍과 수학여행은 학생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교사들에겐 현장학습은 공포의 대상이다. 공교육의 정상화는 학생과 교사가 함께 안전하고 자유롭게 배우고 가르치는 데서 시작된다. 현장학습이 다시 아이들의 소중한 추억이 되려면 교육 당국의 무책임한 방관과 극소수 학부모의 억지 민원이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의 웃음이 다시 버스 안을 채울 수 있다.

김상기 플랫폼전략팀 선임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