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릿(GRIT)’이라는 제목의 자기계발서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자인 안젤라 더크워스는 미국 뉴욕의 공립학교 교사로 일하던 시절, 성적이 좋은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의 차이가 단지 재능 혹은 아이큐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연구를 시작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있고 실패하는 사람에게는 없는 중요한 차이점이 무엇일까.’ 그것이 핵심 질문이었습니다. 인생의 성패를 결정하는 요인을 저자는 그릿(GRIT)이라고 부릅니다. 성장(Growth) 회복력(Resilience)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 끈기(Tenacity) 이렇게 네 단어의 첫 번째 알파벳을 합한 조합어입니다.
저자는 그릿을 장기 목표에 대한 인내와 열정(Perseverance and passion for long-term goals)이라고 정의합니다.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힘이라 하겠고, 열정과 끈기를 합친 성품으로 이해해도 괜찮겠습니다. 이것이 재능이나 아이큐 혹은 물려받은 환경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주변을 보면 똑똑하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고, 집안이 좋다고 큰 성취를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재능이 탁월하지 않고, 아이큐도 평균 이하이고, 가난한 집안 출신임에도 성공하는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일에 대한 열정과 마라톤의 끈기가 있는 사람, 즉 그릿이 있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도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자기계발서 대부분이 그렇듯이, 열정과 끈기의 조합인 그릿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가치’에 대해서 다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열정과 끈기로 상위 1%의 도둑이 될 수 있고, 최고의 사기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릿만으로는 무엇이 더 가치가 있는 인생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릿 앞에 ‘영적’이라는 단어를 첨가하고 싶습니다. ‘영적 그릿(Spiritual Grit)’이란 열정과 끈기에 복음의 가치관을 더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이하 새번역) 이 구절의 ‘마음’이라는 단어를 ‘그릿’으로 바꿔보고 싶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그릿을 품어보라는 권면이 됩니다. 예수님의 그릿은 어떤 것일까요. 6절 이하에 자세히 소개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빌 2:6~8)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정과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시는 끈기가 있으셨습니다. 소위 그릿이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일반 그릿과 구별되는 예수님의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낮아지시고, 자기를 비우시고, 겸손히 행하십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그릿과 비교하면 큰 차이점입니다. 열정과 끈기를 가지고 기필코 낮아지겠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열정과 끈기를 가지고 기필코 순종하겠다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열정과 끈기를 가지고 자기 뜻을 기필코 포기하겠다는 사람 역시 찾기 어렵습니다. 평범한 우리는 보다 높아지기 위해서 열정과 끈기를 장착하려고 합니다. 신앙의 역설이 여기에 있습니다. 기필코 나를 비우고 낮추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셨듯이, 우리를 높이심을 믿는 역설입니다.
2025년 봄을 대면합니다. 교회력으로는 사순절의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열정을 품고 십자가의 자리까지 순종하시는 끈기로 기필코 낮아지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사모하고 닮아 가는 아름다운 봄날이길 소망합니다.
“너희 안에 이 그릿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그릿이니.”
(안산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