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시장의 토허제 해제에
따른 부동산 시장 급등은
성급한 정치적 욕망의 산물
서민의 삶 대신 부유층을 위한
정책으로 가득한 이벤트는
결국 신뢰 상실 가능성 높아
따른 부동산 시장 급등은
성급한 정치적 욕망의 산물
서민의 삶 대신 부유층을 위한
정책으로 가득한 이벤트는
결국 신뢰 상실 가능성 높아
‘난쏘공’이란 줄임말로 유명한 조세희 작가의 1978년 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지금은 대입 수험생의 필독 소설로 통하지만, 1980년대엔 주입식 교육에 찌든 학생들이 대학 새내기 시절 부조리한 현실에 눈뜨도록 하는 의식화 입문서였다. 작가는 가난에 허덕이는 도시 철거빈민의 이야기를 통해, 기득권이 만들어놓은 질서 속에서 살아내야 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간절함을 이야기한다. 난장이(난쟁이) 가장이 쏘아 올린 공은 언젠가 달에 닿기를 바랐지만, 현실의 중력(탐욕과 불공정, 그리고 선택적 정의)은 그 공을 가차없이 끌어 내렸다.
그런데 최근 서울 하늘에도 또 하나의 공이 떠올랐다가 추락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쏘아 올렸다 해서 난쏘공을 빗댄 ‘오쏘공’이 그것이다. 지난달, 잠실·삼성·대치·청담(잠·삼·대·청) 지역의 토지거래허가제를 전격 해제하며 쏘아 올린 이 공은 서울 부동산 시장을 들썩이게 했다. 갭투자가 다시 활기를 띠며 강남권 아파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신고가를 갈아치웠고, 7년 만에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은 ‘강남 불패’가 다시 시작됐다고 했고, ‘투기 열차에 다시 올라탈 기회’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설 전후였던 1월부터 시장이 꿈틀댔는데도 사전에 충분한 점검 없이 토허제를 해제하는 바람에 강남 집값 폭등이란 사달을 낸 것이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9일 한 달여 만에 토허제 구역을 강남 3구와 용산구로 확대하겠다고 백기를 들었다.
그리스 이카로스 신화는 과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경고한다.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아들에게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아주며 “태양 가까이 날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이카로스는 이를 무시하고 더 높이 날다 태양열에 밀랍이 녹는 바람에 바다에 추락했다. 오 시장은 부동산 시장, 특히 건들기만 해도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강남 부동산의 특성을 무시한 채 자유시장 원리에만 매몰된 규제 완화라는 날개를 달고, 성과에만 연연하다 일을 그르친 건 아닌지 되짚어볼 일이다. 이카로스가 자유에만 도취해 추락했듯, 이상에 취한 정책이 현실의 중력을 이겨내지 못한 셈이다. 특히 오는 6월이면 자연 해제될 토허제를 앞당겨 완화한 배경엔 윤석열 대통령 탄핵 결정을 염두에 둔 성급한 대권 행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달 토허제 해제 발표에 앞서 오 시장이 사실상 대권 출정식을 방불케 하는 중견 언론인 초청 간담회를 2주 연속 개최한 것도 단순한 우연으로만 보기 어렵다.
오 시장의 정책이 부유층 위주의 보여주기식 개발 속도전에만 초점이 맞춰진 나머지 이번 토허제 사태처럼 실수요자 보호나 주거 취약계층의 안정을 위한 고민은 뒷전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서울시장 시절, 도시 미관 개선 명분을 내세워 청계천 복원과 뉴타운 개발을 통해 원주민과 서민을 내쫓았다. 그 개발 독주의 궤적이 오늘날 서민은 꿈도 못꾸는 부동산 값 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이명박 대권 쟁취의 기반인 청계천 신화를 오 시장이 답습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여의도 공원에 띄운 열기구 ‘서울달’, 세빛섬 재조명, 상암동 쓰레기 매립지 위에 짓겠다는 ‘서울트윈아이’ 관람차 등 전시성 프로젝트로 가득하다. 영등포구 문래동 공장부지에 확정했던 제2세종문화회관은 백지화되고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명목으로 부유층이 많은 여의도에 건립하겠다고 발표해 부지 변경 경위를 둘러싼 갈등으로 감사원 감사 대상이 됐다. 광화문광장에 대형 태극기를 설치하려다 반발에 부닥치자, 멀쩡한 용산 전쟁기념관 대신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기리는 ‘감사의 정원’을 짓겠다고 한다. 공론화 과정은 석연찮고, 정책은 번갯불에 콩 볶듯 성급하다. 정책이 아니라 이벤트다. 시민의 삶보다 전시성 개발과 대권을 노린 정치적 퍼포먼스가 우선시되기 때문이다.
조세희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라고 썼다. 이 외침이 소설이 나온 지 50년이 다 돼가는 오늘날 서울 한복판에서 사라지지 않고 맴도는 듯하다. 오 시장이 함부로 쏜 공에과열된 부동산 시장은 다시 서민과 무주택자의 희망을 짓누르는 중력으로 작용했다. 정책이 시민의 삶보다 정치적 욕망에 매몰되는 순간, 신뢰를 잃는 건 정치인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동훈 논설위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