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찬바람보다 따뜻한 햇볕으로

입력 2025-03-26 00:32

일상과 현실에서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고압적인 태도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려는 모습을 종종 본다. 상하 관계를 이용해 무조건 따를 것을 요구하거나 일방적인 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자기 생각만이 정답인 듯 다른 입장은 아예 배제해 버리기도 한다. 자신이 가진 권위나 위치를 내세워 상대를 이기려 들고 일관되게 위압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개인의 관계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전반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집단의 힘을 내세워 상대를 거세게 몰아붙이거나 오직 자신들의 입장만 앞세우는 일이 반복된다.

상대방을 힘으로 억누르려 하거나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익숙해진 권력 중심의 문화 관습 때문일 수 있고 상대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부족한 태도에서 비롯될 수 있다. 때론 상황이나 타인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거나 내면의 분노와 좌절을 제대로 다루지 못할 때 강압적 행동이 드러나기도 한다.

고압적이고 위협적인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상대의 순응을 이끌어내 빠른 효과를 내는 듯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상대와의 신뢰와 존중을 무너뜨리고 관계를 더욱 나쁘게 만든다. 힘으로 누르면 겉으로는 침묵하게 만들 순 있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상처와 반감, 때로는 원한이 자리 잡게 된다. 차가운 바람은 더 거센 맞바람을 불러오듯 강압은 갈등의 악순환을 만들어낼 뿐이다.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이는 힘은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에 있다. 강한 말보다는 다정한 말 한마디가, 공격적인 행동보다는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관계를 변화시키고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낸다. 날카로운 비수 대신 부드러운 위로를 건넬 때 사람은 마음의 문을 열고 조금씩 다가온다. 고압적인 태도에 움츠러들었던 자존심은 격려 속에서 회복되고, 날을 세웠던 감정은 존중 속에서 누그러진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때로는 관계의 방향을 바꾸는 강력한 힘이 된다.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북풍과 태양 이야기도 같은 교훈을 전한다. 북풍과 태양이 누가 더 센지 겨루기 위해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로 한다. 북풍은 세찬 바람으로 나그네 옷을 벗기려 했지만 바람이 거셀수록 나그네는 외투를 더욱 꽉 움켜쥐었다. 반면 태양은 구름 사이로 나와 따뜻한 햇볕을 비추기 시작했다. 몸이 따뜻해지자 나그네는 스스로 외투를 벗었다. 사람을 설득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건 강압과 위협이 아니라 따뜻한 기운에 있다. 차가운 바람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지만 따듯한 햇살은 사람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한다.

개인 간 관계에서도 햇볕 같은 태도는 갈등을 풀고 신뢰를 쌓는 열쇠가 된다. 서로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다름을 인정하며, 미움 대신 용서하려는 마음은 관계를 단단하게 만들고 다시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조직이나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다. 강압적 지시보다는 부드러운 격려, 호된 질책보다는 이해와 공감을 보여줄 때 구성원들은 스스로 움직이고 함께한다. 감정을 헤아리고 양보하려는 태도는 끊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고 더 깊은 유대를 만든다. 역사를 돌아보아도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한 이면에는 언제나 적대가 아닌 대화, 배척이 아닌 포용의 힘이 있었다.

힘으로 힘을 누르려 하면 일시적으론 잠잠해 보일 수 있으나 마음 깊은 곳엔 거리감과 불신이 더 깊어질 뿐이다. 하지만 따뜻한 이해와 공감은 상대 마음을 열게 하고 긍정적 반응을 일으킨다. 사람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은 강압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존중이며,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회복시키며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깊은 원동력이다.

박수밀 고전학자·한양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