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LLM 독자 기술 고집은 비효율… 오픈소스 활용을”

입력 2025-03-25 00:11

2022년 11월 미국 오픈AI가 출시한 챗GPT가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을 때 국내 기업들은 너도나도 자체 인공지능(AI) 모델 개발에 뛰어들었다. 2년여가 흐른 뒤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내놓은 저비용 고효율 추론 모델은 이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은 세계적 주목을 끌 만한 AI 모델을 내놓지 못했다. KT가 오픈소스에서 자사의 거대언어모델(LLM)을 비공개한 건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정보기술(IT) 학계와 업계는 한국도 AI 기술 주권을 위해 미국, 중국과 겨룰 수 있을 만한 범용 AI 모델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다만 여러 기업이 제각각으로 범용 모델을 개발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다. PC 운영체제(OS) 시장에서 윈도우, 스마트폰 시장에서 안드로이드가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표준이 될 수 있는 국내형 LLM은 하나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전부 범용 AI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뛰어드는 것보다는 특화형 AI를 통해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기업 중 네이버가 자체 개발한 대규모 AI 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필두로 독립적 AI 역량을 갖추는 ‘소버린AI’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이재성 중앙대 AI학과 교수는 24일 “한국은 여러 기업이 만든 모델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시장이 크지 않다”며 “이미 고도화된 모델을 스케일업(규모 및 성능 향상)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LLM을 만드는 방향이라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승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스탠퍼드 대학원생은 학생마다 LLM을 만들어야 하는 게 과제다. 이미 LLM은 공개된 모델을 활용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며 “이제 LLM을 어떻게 비즈니스에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 AI를 채택하고 사용하는 데 있어서 행정, 교육, 국방, 의료 등 전반적으로 어떻게 응용할지 고민하고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는 특화형 LLM을 금융, 의료 분야 등에서 활용하기 시작했다. 블룸버그는 ‘블룸버그 GPT’를 개발해 광범위한 금융 데이터를 집대성했고, 스탠퍼드대에서 만든 AI 모델 ‘MUSK’는 임상 기록과 이미지를 사용해 환자가 특정 유형의 암 치료에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한다.

한국이 경쟁력 있는 LLM 개발에 성공하면, 오픈소스에 공개해 AI 연구 생태계에 기여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국방, 금융 등 보안이 중요한 영역은 제외하고, 개방해도 무리가 없는 분야의 모델을 공개하면 개방형 진영에서 함께 성장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정책이 확실한 방향성 없이 ‘한국형 AI’만 쫓는 식으로 흘러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국가인공지능위원회는 지난달 20일 ‘월드 베스트 LLM 개발’을 위해 모델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연구 자원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어떤 AI 모델을 개발할지에 대해서는 “한국형 추론AI 모델 개발, 세계 최소비용 sLLM 개발 등 목표를 AI 국가대표 정예팀이 제시한다”며 정확한 방향성이 없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했다.

학계 관계자는 “AI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로 ‘AI로 무언가 해봐’라고 했을 때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억지로 만들면 결과가 별로 좋지 않다”며 “명확한 관점을 갖고 개발에 나선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조민아 심희정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