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재난현장 군 투입 시스템으로

입력 2025-03-25 00:39

지난 주말 발생한 산불이 사흘 넘게 이어지고 있다. 경남 산청, 경북 의성, 울산 울주 등 전국 40여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계속됐다. 산불 대응 3단계가 3곳에서 동시 발령됐다. 전문가들은 산불의 동시다발성에 주목하며 그동안 정부가 대응하던 수준을 뛰어넘는 산불 수준에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기후온난화로 갈수록 산불의 규모나 양상이 달라지면서 대응에도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아직 3월인데 기온은 초여름 날씨처럼 더웠다. 올해는 평년보다 강수량도 적은 편이다. 하나의 산불이 여러 개로 번지며 곳곳으로 확산됐고 진화 속도는 이를 쫓아가지 못해 더디기만 하다. 그 과정에서 안타까운 인명 피해도 일어났다.

산불이 발생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진화용 헬기 등 가용 자원과 인력 지원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지자체뿐만 아니라 그동안 산불 등 대응 경험이 많은 환경단체 활동가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헬기 운용 등에 제약이 많다. 당장 군 헬기 등 사용 가능한 자원을 다 동원해도 대응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현장 상황을 우려했다.

지난 주말은 재난 대응을 진두지휘할 국무총리도, 행정안전부 장관도 대행체제로 운영 중이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4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기각되자마자 산불 관련 메시지를 내놨다. 국방부와 행안부 등 관계부처에 “가용 병력과 자원을 총동원해 진화에 총력을 다할 것”과 “인근 주민 대피, 입산객 통제 등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국방부는 정례브리핑에서 군 인력 및 장비 투입 상황을 알렸다. “2작전사령부를 중심으로 육군과 해병대, 공군 등 1350여명의 장병과 항공사·공작사 헬기 35대 등 가용 인력 및 장비를 투입해서 산불 진화와 잔불 제거, 의료 지원 등을 실시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산불 진화 및 대민지원 간에 현장지휘관의 명확한 지휘통제를 통해 장병들의 안전을 최우선해 임무를 수행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군은 각종 재난 및 사고 현장에 투입돼 대민지원을 해 왔다. 예상치 못한 재난·재해, 전염병 등이 꾸준히 발생하면서 군의 대민지원은 계속 늘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13년 6만 5700여명에서 2022년 101만7000여명으로 15배 증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군이 투입돼 활동하는 과정에서 명확한 기준이나 제대로 된 안전장치가 없어 논란이 됐다. 2023년 7월 경북 예천에서 폭우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원이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채 상병 사건의 파장은 그래서 더 컸다. 당시 국가인권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재난현장에 동원되는 군인 보호체계와 안전관리 실태 점검이 필요하다며 직권조사했다. 이를 토대로 ‘국방 재난관리 훈령’에서 국가적 재난 상황과 일반 대민지원 상황을 구분하고 관련 매뉴얼을 작성해 예하부대에 하달할 것 등을 권고했다. 실제로 군은 지난해 채 상병 순직 1주기를 맞아 훈령 개정안을 발령했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재난 현장에 군 인력을 파견하고 활동하는 것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진이나 태풍 등 각종 자연재난이 발생하는 일본의 자위대는 재해 현장 파견 시 관련 수당까지 지급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재난 대응과 관련한 평소 훈련 역시 소방은 물론 군과 경찰이 함께 진행해 평소 대비 능력을 갖춰놓는다.

이를 위해서는 갈수록 늘어나는 산불 등 기후 재난을 국가안보 문제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반짝 급할 때 군 인력을 지원해 사고 없이 활용하고 돌려보내는 식의 소극적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다. 각종 기후 재난 상황을 국가안보 문제로 인식할 때 평소 충분한 훈련과 체계적인 인력 투입이 가능할 것이다.

김나래 사회부장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