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주주권 행사의 칼자루를 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가 야권 성향 우위 구조로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국회의 상법 개정 움직임에 더해 주주총회 안건 통과에 있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국민연금의 성향 변화에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24일 재계 등에 따르면 올해 주총 안건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수책위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적으로 국민연금은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하지만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수책위가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한다. 최근 수책위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관련 안건을 콜업(의결권 행사 요청)해 지난 1월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제와 이사 숫자 상한 등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수책위는 상근 전문위원 3명, 외부 전문가 6명으로 구성된다. 상근 전문위원 3명과 외부 전문가 3명은 각각 사용자단체, 근로자단체, 지역가입자단체에서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3명은 전문가 단체가 추천한다. 최종 의결권 행사 방향은 다수결 원칙으로 정해진다.
지난달 2번째로 위원장 임기를 시작한 원종현 상근전문위원을 비롯해 이연임 금융투자협회 박사, 이상민 법무법인 에셀 변호사, 박래수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한석훈·신왕건 상근전문위원과 정우용 상장사협의회 부회장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한 위원 외에는 색채가 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인형(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연태훈(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위원은 중도 성향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 5월 전문가단체 몫으로 추천된 박 교수가 임명된 이후 수책위 내 좌우 균형이 깨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소액주주 이익 제고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 관련 다양한 논문을 집필한 데다 지난해 말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상법 개정 관련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여기에 원 위원장 선임도 수책위 분위기를 변화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원 위원장은 국민연금연구원 부원장 등을 역임한 대표적인 야권 성향 인사다. 2020년부터 6년째 상근위원을 맡고 있다. 2021년 첫번째 수책위원장 재직 당시 주주대표소송을 추진하기도 했다. 원 위원장이 수책위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면 위원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 관계자는 “다수결로 흘러가는 수책위지만 위원장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다”며 “회의의 방향을 조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원들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책위 내부에서 주주 권익 확대 목소리가 커지며 지배구조 관련 잡음이 많았던 대기업들의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최근 대기업 총수의 계열사 사내이사 선임 안건, 이사 보수 한도 안건 등에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 특히 상법 개정안 통과와 맞물려 더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배주주에 불리한 방향으로 국민연금 의결권이 행사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