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WC를 세계 최대 게임 축제로 만드는 게 우리 목표”

입력 2025-03-25 23:30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얀 양커 e스포츠 월드컵(EWC) 게임 디렉터. 그는 “한국은 e스포츠 최강국”이라며 “한국 게임 업계에 항상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한형 기자

e스포츠 월드컵(EWC)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리는 e스포츠 대회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주도해 지난해 처음 열린 이 대회는 20여개 종목에 무려 6000만 달러(약 880억원)에 달하는 파격적인 상금을 내걸어 관심을 끌었다. 첫 대회부터 세계 e스포츠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에서 EWC 게임 디렉터인 얀 양커(Jan Jahnke)를 만났다. EWC가 보여주는 광폭 행보의 배경, 20여개 종목을 선별하는 방식, 그들이 꿈꾸는 e스포츠의 미래 등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한국 e스포츠 팬들에게 자신을 소개한다면.

“한국 e스포츠 팬들에게 인사할 기회가 생겨 기쁘다. EWC 파운데이션에 합류한 지 약 1년이 지났다. 이전에는 중국 IT 기업 텐센트에서 PUBG 모바일과 왕자영요 e스포츠를 담당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서 11년간 e스포츠를 전담했다. 한평생 e스포츠와 함께한 셈이다.”

-e스포츠 산업에 입문한 계기가 있는지.

“예전부터 ‘경쟁(competition)’을 좋아했다. 2001년 FPS 게임 선수로 처음 e스포츠에 입문했는데, 당시만 해도 e스포츠라고 불릴 만큼 체계적인 환경이 갖춰져 있지도 않았었다. 1년 수입이 고작 몇백 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당시의 경험 덕분에 게임 해설을 할 수 있었고, 소규모 대회를 열면서 활동 무대를 넓혀갈 수 있었다.”

-대회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투자금 회수가 가능한가

지난해 EWC 현장 사진들. 이한형 기자

“정말 많이 듣는 질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e스포츠 대회의 성장만 바라보고 투자하는 게 아니다. e스포츠 생태계 전반을 보고 투자하고 있다. EWC 기간 동안 리야드에선 다양한 게임 대회와 축제가 열린다. EWC가 숙박·항공·관광·요식업계 등을 비롯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 EWC는 현재 24개 이상의 게임을 종목으로 채택했는데, 앞으로도 종목 수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단일 종목 대회에선 불가능한 수준의 투자가 이뤄진다. 종목마다 엄청난 상금이 걸려 있고, 최고의 팀들이 경쟁하는 곳, 그 무대가 바로 EWC다. 이런 대회를 통해 우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면서, EWC를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게임 축제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다.”

-눈여겨보는 한국 게임이 있는지.

“이번에 방한한 것은 한국의 게임 개발사나 유통사들과 종목 추가에 대해 논의하고 이들 업체와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출시가 예정된 게임들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한국 게임에는 항상 관심을 갖고 있었다. e스포츠 대회뿐 아니라 게임 축제에도 활용할 만한 게임 IP(지식재산권)가 있는지 보고 있다.”

-‘PUBG 배틀그라운드’의 PC 버전과 모바일 버전을 모두 종목으로 채택했다.

“배틀그라운드는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유저를 보유한 IP다. 게임 업계에서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진 IP이기도 하다. EWC의 종목으로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크래프톤·텐센트와 EWC의 파트너십이 공고한 데서 나오는 시너지 효과도 있다.”

-상금 규모 외에 앞으로 대회 위상을 높일 방안이 있다면

“우리는 e스포츠 선수와 팀을 ‘주류(mainstream)’로 끌어올리는 걸 중요한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e스포츠 선수들과 기성 스포츠 스타의 교류가 그 방법 중 하나가 될 듯하다. 지난해 배틀그라운드 우승팀인 소닉스는 올해 초 포뮬러 원(F1) 대회에 초청받기도 했다. 상금은 마케팅 수단에 더 가깝다고 본다.”

-e스포츠가 기성 스포츠의 장벽을 허물 수 있을까.

“한국은 이 고민을 비교적 일찍 시작한 편이다. 선수들이 열정을 갖고 대회에 임하고, 노력해서 실력을 키우고, 팬들이 그런 최상위권 선수들의 대결을 보는 걸 즐긴다는 점에서 둘은 본질적으로 같다. e스포츠가 스포츠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논쟁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훗날엔 많은 사람이 둘 중 본인이 좋아하는 걸 자연스럽게 즐기게 될 것이다.”

-한국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은 자타공인 e스포츠 최강국이다. 우리의 성과를 한국 e스포츠 팬들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된 점을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 지난해엔 촉박한 시간과 부족한 인력 때문에 우리가 준비한 것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올해는 좀 더 일찍 준비를 시작했고, 지난해보다 더 나은 프로모션과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 기자들도 리야드에 방문했으면 한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