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2차 취임사가 새롭게 읽힌다. “양측의 기도 둘 다 응답될 순 없었습니다. 어느 측의 기도도 완전한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전능자께서는 그분 자신의 뜻이 있습니다.” 리처드 카워딘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가 신간 ‘의로운 투쟁(Righteous Strife)’에서 재조명한 취임사 구절이다.
1865년 3월 당시 링컨은 이미 미국 수정헌법 제13조를 성공적으로 통과시켜 노예제 폐지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가 이끈 북군의 승리는 이미 확정적이어서 종전을 한 달 남짓 앞두고 있었다. 더군다나 대선에서 다시 승리해 제2기 임기를 여는 시점이었다. 이들 결과에 이르기까지 링컨이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고 또 응답받았는지 미국 연방 국민의 7할 이상을 차지하는 기독교인은 익히 알고 있었다. 링컨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많은 범국가적 금식과 기도의 날을 선포한 대통령이다. 그런 그가 “어느 측의 기도도 완전한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링컨은 왜 이런 고백을 했을까. 카워딘의 연구에 따르면 이는 당시 기독교인의 기도 내용이 제각각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남과 북 양측으로 나뉘어 서로를 적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양측이 전쟁에 나서면서 하나님께 상대편에 맞서 내 편을 들어주길 간구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카워딘이 재조명한 내용 중 하나는 남과 북은 물론이고, 각 진영 내 기독교인의 정치적·신앙적 입장조차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특히 전쟁에서 이긴 링컨이 이끈 북 연방의 경우 보수적 기독교인과 반노예제를 옹호하는 기독교인 사이에서 내부 충돌이 종종 발생했다. 이 둘 사이에는 ‘기독교 민족주의’란 점을 제외하곤 공통점이 없었다. 연방 내 이들의 갈등은 전시 초기부터 노예 해방과 링컨의 재선에 이르기까지 주요 전시 사건으로 기록됐다. 시간이 흘러 노예 해방 옹호와 진보적 관점이 기독교계 안팎에서 우세를 점하자 보수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익숙한 질서가 상실되는 걸 한탄했다. 이런 추세는 더 다양한 방면의 균열로 이어져 미세한 지역 갈등을 심화시켰고, 링컨의 북군은 서로 다른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남북 전쟁이 북 연방의 승리로 끝나자 북 연방의 기독교인은 지역과 정치적 성향별로 갈라졌다. 이들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각각 상반된 기도를 하나님께 올렸다. 그렇기에 링컨의 취임사에 담긴 이 고백은 당대 상황을 직시한 정직한 문장이라 할 수 있다. “그 어느 측의 기도도 완전한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전쟁에 진 남군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것은 자명한 사실이나, 전쟁에 이긴 북군 역시 통일된 기도를 드리지 못했기에 승리가 이들의 분열된 기도의 응답이라 보긴 어렵다는 게 링컨의 고백이다.
비록 연방 내 기독교인 간 분열은 심화됐지만 그럴수록 링컨은 오히려 연방을 섭리의 도구로 봤다. 전쟁 또한 하나님의 뜻, 즉 ‘섭리적 렌즈’로 보기에 이르렀다는 것이 카워딘의 또 다른 놀라운 관찰이다. 이른바 공개적인 기독교인이 아니었던 링컨은 연방 내부 기독교인의 분열을 보며 점차 국가의 죄와 심판, 구원이라는 주제를 받아들여 민족적 회개를 촉구하기에 이른다. 그가 경험한 ‘섭리적 전환’은 정치적으로 분열된 기독교를 연방의 위협으로 보는 대신, 노예해방이라는 대의를 위해 경쟁하는 종교적 민족주의로 이해하도록 도왔다.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양한 기독교가 있었기에 오히려 연방은 유지될 수 있다는 걸 링컨이 깨달았다는 관찰이다.
기독교인의 정치적 충돌은 때로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카워딘의 책으로 다시 접하는 링컨의 취임사가 새롭게 다가온다. “전능자께서는 그분 자신의 뜻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에겐 그분의 백성을 향한 선한 뜻이 있다. 우리가 이 뜻을 따르는 데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이를 이뤄가는 건 늘 변함이 없다.
박성현 (미국 고든콘웰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수석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