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은 논의가 짧고 불충분했다. 갈라파고스 입법이라는 비판이 나올 법했지만 ‘소액주주를 위한 정의 구현’이라는 프로파간다(선전)에 묻힌 듯하다.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상장회사의 합병 등의 거래에 국한해 이사의 충실의무를 적용하자는 절충안도 제시됐다. 이는 상법 개정안보다 상장회사에 더 불리한 조건이었다.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책임을 사후적, 추상적으로 논하는 데 초점이 있지만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합병 비율과 물적분할 후 상장 등 가장 첨예한 이슈에서의 소수주주 보호를 다루기 때문이다. 즉 상법 개정안보다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하지만 정치적 상징성이 우세해서였을까. 자본시장법 개정은 검토조차 못한 채 상법 개정안만 국회를 통과했다. 상법은 주식회사라면 규모나 형태를 묻지 않고 적용되므로 개정안에 따라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상장사든 비상장사든 모든 주식회사의 이사는 주주에 대해서도 충실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지난달 기준 상법에 따라 설립된 법인은 150만개가 넘고, 그중 89.6%(약 134만개)가 주식회사다. 상법의 적용 범위는 이처럼 넓은데 개정안은 이를 아우르기에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자본시장법 개정은 핀셋이다. 합병만이 아니라 자산 양수도 등 합병과 유사한 모든 거래에 적용된다. 기업의 악행 사례로 지적된 대부분은 합병 또는 유사 거래인 점을 감안하면 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로도 입법 목적은 달성될 수 있다. 자본시장법은 상장회사만 적용된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외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만큼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서라도 상장회사에 먼저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반면 상법 개정은 핀셋이 아닌 쥐불놀이에 가깝다. 놀이 삼아 논밭의 해충이나 쥐를 박멸하는 데 그쳐야 하나, 쉬이 산불로 번진다. 기업의 악행을 잡겠다고 핀셋 대신 쥐불을 놓는다면 이것이 기업의 바탕을 이루는 법제도와 인프라를 태우는 거대 산불로 번질 위험이 너무 크다. 상법은 우리 기업이 기대고 있는 인프라이자 언어다. 기업의 핵심 기관인 주주총회와 이사는 모두 상법의 틀 안에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런 측면에서 상법 개정은 자칫 모든 상장·비상장 기업에서 어제의 친구를 오늘의 적으로 돌려놓을 위험이 크다. 2, 3대 주주는 주주 이익의 공평한 대우를 주장하며 모든 내부거래를 위법행위라고 간주할 것이고, 전문경영인들은 소송이 두려워 이사직을 기피할 것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상황은 이사회가 중요한 결정을 두고 위법성만 논의하다가 기능이 마비되는 것이다.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핀셋으로 잡는 것이 부작용이 적고 효과도 좋은데, 쥐불을 놓을 필요가 있을까. 역사는 이번 상법 개정
안 통과를 시대를 역행하는 이벤트로 기록할 것이다. 쥐불놀이가 산불로 번지기 전에 다시 생각해야 한다.
천재민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