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 때 뿌려진 의료선교의 씨앗, 사랑의 인술로 ‘만개’

입력 2025-03-25 05:19 수정 2025-03-25 10:47
지난 18일 촬영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의 전경이다.

우리나라에 서양 의술의 문이 열린 건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 당시 외교관 신분으로 한국에 온 의료 선교사를 통해서였다. 정변 때 개화파에 의해 여러 곳에 흉기로 난자당한 민영익을 미국공사관 소속 의사였던 호러스 알렌이 살려냈다. 알렌은 미국 북장로교 파송을 받은 의료 선교사였다.

왕의 최측근이었던 민영익을 살린 알렌은 고종에게 큰 신임을 얻는다. 이런 신뢰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제중원이 문을 여는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고종이 하사한 당나귀를 타고 왕진 가는 호러스 알렌(오른쪽) 선교사. 연세의료원 제공

제중원은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로 운영권이 이관되면서 본격적인 선교병원으로 재편된다. 1904년 미국의 석유 재벌이던 루이스 세브란스 장로의 기부로 새 병원이 건립되며 세브란스병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병원에 딸린 세브란스의학교는 1908년 한국 최초의 의사 7인을 배출했는데 이 학교가 호러스 G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연희전문학교와 통합해 훗날 연세대학교가 된다.

의료 선교사들의 활약은 전국에 근대식 병원 설립으로 이어진다.

윌리엄 스크랜턴 선교사는 1885년 10월 9일 미국 공사관 근처에 있던 사택에 최초의 민간병원인 ‘시병원’을 열었다. 이 병원에서 스크랜턴 선교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의술을 펼쳤다.

1895년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 세브란스 초대 교장이었던 올리버 에비슨 선교사는 당시 조정으로부터 방역 책임을 부여받는다. 그는 “식사 전 반드시 손과 입안을 깨끗하게 씻으십시오. 이를 준수하면 콜레라에 걸리지 않습니다”라는 위생 공고문을 전국에 붙였다. 손 씻기와 끓인 물 섭취 등 위생 교육을 펼친 결과 치사율 80~90%에 달했던 콜레라가 불과 7주 만에 진정됐다. 에비슨은 ‘손 씻기’의 중요성을 일깨운 방역의 선구자였다.

돌봄과 희생의 손길로 시작된 의료선교는 단순한 치료를 넘어 복음의 실체를 삶으로 증명한 결실로 이어졌다.

1935년 한국을 떠나는 올리버 에비슨(왼쪽) 선교사 부부. 연세의료원 제공

성백걸 백석대 교수는 24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죽어가는 여성과 백정, 버려진 아이들에게 복음과 함께 손을 내밀었던 것이 선교사들의 사랑이었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로제타 셔우드 홀과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이 황해도 해주 지역에 세운 ‘구세병원’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이곳에서 부부는 여성과 소외 계층에게 의술을 베풀었다. 남편 윌리엄 홀은 1894년 청일전쟁 당시 평양에 창궐한 콜레라 환자를 돌보다 돌림병에 걸려 순직했다.

로제타 홀은 남편 사후에도 귀국하지 않고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을 전했다. 민경배 웨이크사이버신학원 석좌교수는 “의료 선교사들은 단순히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는 차원을 넘어 삶 전체를 바쳐 주변인들을 변화시켰다”면서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 감염을 두려워한 가족들마저 병든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지만 선교사들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민 교수는 “언더우드 선교사는 서울 정동 근처에 ‘언더우드 쉘터’를 세워 시신과 병자들을 직접 데려다 씻기고 입히고 장례까지 정성껏 치렀다”며 “당시 사대문 안은 양반 중심의 사회였고 병자는 말 그대로 버려진 존재였지만 복음을 품었던 이들은 그 경계를 넘어섰다”고 전했다.

경계를 넘어서는 인술은 서울에만 머물지 않았다. 마티 잉골드 선교사는 1898년 서울 밖 최초의 민간 선교병원인 전주 장로교병원을 세웠다. 이 병원이 현재 전주예수병원의 전신이다. 이밖에도 대구 제중원(1899년) 광주기독병원(1905년) 등이 세워졌다. 1913년에만 33개의 의료기관이 전국 곳곳에 문을 열었다.

마티 잉골드가 처음 문을 연 한옥 진료소(1898). 전주예수병원 제공

적지 않은 병원이 지역을 대표하는 의료기관으로 성장했다. 전주예수병원이 대표적이다. 이 병원은 연간 70만여명의 외래환자와 21만명이 넘는 입원 환자를 돌보는 호남권 거점 병원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5월부터는 호남 최초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도 열었다. 신충식 전주예수병원 원장은 “선교사들은 목숨을 걸고 조선 땅에 의료의 씨앗을 심었다”며 “우리 병원은 그 정신을 계승해 국내외 소외된 이웃을 섬기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예수병원 전경. 전주예수병원 제공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은 “결핵 퇴치와 손 씻기 운동, 구급차 도입 등은 모두 위생에 대한 문화를 바꿔놓은 성과였다”면서 “선교사들이 시작한 기초적 위생 개념은 오늘날 한국이 의료 선진국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선교사들이 심은 의료 선교의 씨앗은 거목으로 자라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2011년부터 ‘글로벌 세브란스 채리티 프로그램’을 운영해 지금까지 저개발국가 환자를 초청해 무료로 치료하고 있다.

불가리아 부토보교회 나스코 강도사의 아들 빅토르(5)군도 이 혜택을 받았다. 나스코 강도사 가족은 박계흥 선교사의 도움으로 지난해 한국을 찾아 수술을 받았다. 가족은 23일 두 번째 수술을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박 선교사는 “세브란스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를 향한 복음의 실천 공간”이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소요한 감신대 교수는 “복음은 말보다 삶으로 전해질 때 힘이 있다”며 “선교사들의 손길과 눈빛, 그리고 실제적인 도움이야말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복음의 유산”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