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재밌게”… 헌재앞 싸움판 벌여 돈버는 유튜버들

입력 2025-03-23 19:00

일부 보수 정치 유튜버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슈퍼챗’(현금 후원)을 유도하기 위해 과장된 폭력행위를 부추기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 반대 진영 집회 참가자들에게 접근해 말다툼을 벌이거나 폭력을 행사해 긴장감을 조성한 뒤 유튜브 구독자들의 후원금을 받는 식이다. 유튜버들은 목적을 달성한 뒤 “오늘도 좌파를 물리쳤다”며 현장을 뜨는 경우가 많아 경찰도 이들 단속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23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112 신고가 접수된 헌재 인근 유튜버 간 싸움은 382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정식으로 사건이 경찰에 접수되거나, 처벌을 원한다고 밝힌 건수는 12건에 그쳤다.

서울 종로구 안국역 1번 출구 앞에서는 다수의 유튜버들과 탄핵 찬반 집회 참가자들이 뒤엉켜 싸움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상대방을 향해 “이재명 구속” “윤석열 구속”을 외치며 말다툼을 벌였다. 감정이 격해진 이들은 서로 멱살을 잡고, 경찰에 ‘폭행당했다’며 신고를 했다. 출동한 경찰이 싸움을 제지하자 그제야 현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 유튜버는 휴대전화 영상 화면을 보며 “좌파를 물리쳤다. 다시는 이곳에 발들이지 못하게 하겠다”며 “후원금 감사합니다”고 말했다.

헌재 앞에서 만난 보수 유튜버 A씨는 폭력을 부추기는 이유에 대해 “좌파들과 싸우고 욕먹으면 기분은 당연히 나쁘지만 그림이 재밌지 않냐”면서 웃었다. A씨는 “헌재 앞에 이렇게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그림을 그려야 사람들이 더 모여 같이 결속력을 다질 수 있다. 슈퍼챗도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유튜브 통계사이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지난 10~16일 가장 많은 슈퍼챗을 받은 국내 유튜브 채널 50개 중 23개가 정치 유튜브 채널로 파악됐다.

이 중 대다수는 헌재 앞에서 폭력을 조장하거나 경찰과 탄핵 찬성 측을 비난하는 영상 위주로 생중계를 하고 있다. 한 보수 유튜브 채널은 일주일 만에 약 440만원의 수익을 냈다. 이 채널엔 진보 성향의 고령층 참가자들을 조롱하는 제목의 영상들이 다수 올라와 있다.

슈퍼챗 순위가 높은 다른 정치 유튜브 채널도 유사한 콘텐츠를 다뤘다. ‘헌재 앞 퇴근길 심각 상황’ ‘극좌들의 우파 청년 2명 폭행 영상’ ‘헌재 앞 폭행현장과 경찰의 태도’ 등의 영상을 업로드해 구독자들의 반응을 끌어낸 뒤 수백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유튜버들 간 연출용 싸움에 현장 경찰력이 이용당한다는 지적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개인 간 싸움은 고소 절차 등을 원하는 경우 형사계로 인계해야 하는데, 대부분 싸움을 말리고 나면 현장에서 사라지거나 고소는 원치 않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 사람이 몇 번씩 신고하는 경우도 잦다”며 “그럴 때마다 계속 출동해 싸움을 말리고 있다”고 했다.

윤예솔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