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의 가계대출 지침이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은행권의 대출 정책도 덩달아 오락가락하고 있다. 올해 들어 풀었던 가계대출 제한이 한 달 만에 재개되는 등 은행들이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은행별 대출 조건이 복잡해져 대출 소비자들의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은 오는 28일부터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구에서 유주택자의 추가 주택구입자금 대출을 제한한다고 23일 밝혔다. 지난해 9월 9일부터 유주택자에 대해 수도권 소재 구입자금 목적 신규대출을 제한하다 지난달 21일부터 재개했는데, 한 달여 만에 다시 막은 것이다.
하나은행은 오는 27일부터 서울시 1주택 이상 보유 세대에 주택구입자금 대출을 중단한다. 하나은행은 그간 주택구입자금 대출을 제한하진 않았으나 새로 대출을 제한하는 것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7월 29일부터 전 지역에서 다주택자의 주택구입자금 대출을 막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선 1주택자까지 주택구입자금 대출을 중단한 상태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9월 10일부터 유주택자의 주택구입자금 대출을 제한하고 있다. 기존엔 1주택자는 대출 실행 당일에 기존 주택을 처분해야 했으나 지난달 14일부터는 2년 내 처분하면 되도록 조건을 다소 완화했다. NH농협은행은 지난해 9월 6일부터 서울과 수도권에서 다주택자의 주택구입자금 취급을 제한했다.
전세자금대출 조건도 은행마다 제각각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1월 14일 기존 주택 처분, 선순위 채권 말소·감액 조건부 전세대출을 허용했고, 하나은행과 NH농협은행은 각각 오는 27일, 지난 21일부터 서울 지역에서 조건부 전세대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처럼 은행마다 대출 정책이 들쭉날쭉인 것은 금융 당국이 손바닥 뒤집듯 방침을 뒤집고 있는 탓이다. 지난 17일 금융당국 주재 ‘가계부채 점검 회의’에서 금융 당국은 은행권 참석자들에게 서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매수심리 확산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며 “은행 자체적으로 운용의 묘를 발휘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지난달 24일만 해도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이제는 은행들이 (기준금리 인하를) 좀 반영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그동안 금리인하 효과가 경제 곳곳에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고 거들었다. 은행권에 금리를 낮추라는 확실한 신호를 보냈지만 한 달 만에 어정쩡한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이는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와 재지정 ‘해프닝’의 영향이다. 지난 1월만 해도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가 안정적이라고 평가했으나 토허제 해제 이후엔 토허제 영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투기수요 차단을 위한 추가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 당국의 지침은 외관상 ‘자율’이나 은행들은 사실상 강제책으로 받아들인다”며 “당국이 지침을 번복할 때마다 은행권이 우왕좌왕하며 소비자들의 혼란만 가중되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