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변수 속 머리맞댄 韓·中·日… 북핵·대미 대응엔 온도차

입력 2025-03-23 18:56
조태열(오른쪽) 외교부 장관과 왕이(왼쪽)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이 22일 도쿄 외무성 이쿠라공관에서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과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를 한 뒤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중·일 외교수장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경제·통상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력을 다짐했다. 미국의 통상 압박이 본격화한 상황에서 3국의 교류 협력 강화 의사를 재확인했다는 평가다. 다만 대(對)미국 대응 방식이나 북한 비핵화 문제 등을 두고는 한·일과 중국이 온도차를 드러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은 22일(현지시간) 일본 도쿄에서 만나 3국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지역 정세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한·중·일 외교장관 회의 개최는 2023년 11월 부산 개최 이후 1년4개월 만이다.

조 장관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중·일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가 3국의 공동 이익이자 책임임을 확인했다”며 “3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는 한편 북한의 도발 중단과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와야 외무상도 “북한의 비핵화는 3국 공통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왕 부장 역시 “중국은 국제사회와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고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왕 부장은 북한 문제를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고, 대신 “한반도 문제의 근원을 직시해야 한다”며 미국 책임론을 시사했다.

중국은 대미 견제 메시지를 부각하는 데도 주력했다. 왕 부장은 “인구 16억명, 국내총생산(GDP) 합산 24조 달러인 3국은 역내 경제통합을 추진키로 했다”며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확대 추진, 지역 공급망 원활화를 위한 대화와 소통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3국은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견지하고 경제 글로벌화를 더욱 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통상 압박에 맞선 역내 협력을 강조한 발언이다.

반면 조 장관과 이와야 외무상은 FTA나 RCEP 등에 대해 공개 언급을 하지 않는 등 신중한 스탠스를 보였다. 외교부 관계자는 “중국이 말하는 역내 경제협력 활성화 등에 원칙적으로 찬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닛케이 신문은 “트럼프 행정부의 불확실성은 3국이 서로 접근하는 주된 요인이 됐다”며 “3국은 경제를 축으로 하는 협조를 우선시하고 민감한 현안 해결은 뒤로 미뤘다”고 분석했다. 아사히 신문은 “3국의 생각이 뒤얽힌 가운데 동아시아의 기묘한 안정이 연출됐다”고 평가했다.

한·중은 양자회담도 열고 양국 문화교류 복원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외교가에서는 ‘한한령’(한류 제한령) 해제가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은 오는 10월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협력도 약속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시진핑 주석 참석을) 거의 전제하고 얘기를 나눈 느낌”이라며 “돌발 상황이 아니면 (시 주석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