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권위주의적인 행보가 튀르키예와 헝가리, 세르비아 등 다른 나라 독재 정권이 더 멋대로 행동하도록 만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각국의 독재자들이 반민주주의적 조치를 감행해도 미국이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데다 ‘트럼프가 하는 만큼 나도 할 수 있다’는 인식도 심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현지시간) “트럼프의 정책과 발언, 행동이 세계 각국에서 법치주의와 표현의 자유, 인권을 향한 공격을 정당화하고 있다”며 이런 사례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을 지목했다.
튀르키예의 경우 22년째 집권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을 꺾을 수 있는 대항마로 떠오른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시장이 지난 19일 전격 체포됐다. 이후 이마모을루의 석방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자 튀르키예 내무부는 집회·시위금지령을 발령하고 물대포·최루탄·고무총을 동원한 강경 진압에 나섰다. AFP통신은 “이스탄불에서 시작된 시위가 전국 81개주 가운데 최소 55개주로 확산됐다”고 보도했다.
WP는 “최근 수년간 정치적 라이벌과 법조인, 언론인을 표적으로 삼아온 에르도안이 이번에는 이마모을루를 포함한 100여명을 부패 혐의 등으로 한꺼번에 구금했다”면서 “이는 에르도안의 (권위주의적) 행보가 강해졌음을 의미하며 그의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영향권 안에 있어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오르반 총리도 트럼프 2기에서 권위주의 행보를 강화한 지도자로 꼽힌다. WP에 따르면 오르반의 비서실장인 게르겔리 굴리아스는 최근 기자들 앞에서 “미국의 정권 교체가 헝가리 정부의 가슴팍을 짓눌러온 ‘군홧발’을 제거했다. 숨쉬기가 한결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동맹과 인권을 중시하던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때 서방국들의 눈치를 보며 위축됐던 오르반 정권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노골적으로 극우 행보를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발칸반도의 독재자’로 불리는 부치치 대통령은 트럼프가 연방정부에 대해 낭비와 사기를 주장하며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것에 영향을 받아 세르비아 정부를 감시하는 시민단체들을 급습해 수사하고 있다.
로사 밸포어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유럽본부 이사는 “트럼프가 세계 각국의 독재자들과 잠재적 독재자들을 하나로 모으고 있다”며 “이들은 급진적 우파의 의제를 공유하고 있으며 정책에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트럼프 행정부가 권위주의 정권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미국 공화당 홍보 담당자를 지낸 타라 셋마이어는 가디언에 “민주주의의 ‘데프콘 1단계’(최고등급 방어준비태세)로 근접하고 있다”며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크지 않다”고 우려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