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은 우리 동네 아들”… MZ목사·시골 어르신 ‘행복 동행’

입력 2025-03-25 05:07
박지현 목사와 서유미 사모가 아들 수호군과 함께 지난 12일 충남 논산 신기2리 마을에 있는 신은감리교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미정이네 엄니 일한다는 소문 듣고 찾아왔슈. 음료랑 간식 가져왔으니 하나씩 드시고 욕보셔유.”

지난 12일 오후 3시 충남 논산 신기2리의 한 비닐하우스 딸기밭. 70~80대 할머니들이 한창 딸기를 솎아내는 중에 젊은 남성이 양손 가득 간식거리를 사 왔다. 그의 정겨운 사투리에 어르신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젊은이들이 모두 떠난 시골에 스스로 찾아온 1988년생 박지현 목사다. 88세 김용희 할머니는 “우리 목사님은 이 동네 아들이나 다름없다”고 엄지를 세웠다. 박 목사도 “사람들은 제가 어르신들을 돌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분들이 우리 가족과 교회를 돌보신다”며 웃었다.

노인 마을에 온 젊은 부부 목사

같은 날 박 목사 가족이 마을회관에서 동네 할머니들과 찍은 기념사진.

박 목사가 이끄는 신은감리교회는 60가구가 전부인 작은 마을 한가운데 있다. 주민 평균 연령이 70대 중반, 대부분이 홀로 사는 노인이다. MZ세대인 박 목사는 지난해 3월 서유미(36) 사모, 다섯 살 아들 수호와 함께 이 마을에 왔다.

어릴 적 충남에 살았던 터라 익숙할 줄 알았지만, 목사가 돼 가족과 정착하는 건 완전히 달랐다. 시골 목회 환경도 녹록지 않았다. 1970년 세워진 교회엔 열 명 남짓한 성도가 전부였다. 70~80대 어르신이 절반 이상이다.

‘젊은 목사 양반이 얼마나 가겠느냐’는 의심 어린 시선도, 텃세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마을을 돌며 매일 아침 인사를 나눴고, 커피믹스를 타서 함께 마시며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박 목사 가정이 이 동네에서 아들 이름을 딴 ‘수호네’로 불리는 덴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년이 지난 지금은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과 2시간씩 수다 떠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르신 힘에 부치는 일엔 박 목사가 등장한다. 10㎏짜리 깨 자루를 번쩍 들어 옮기고 읍내 볼일이나 병원 가는 길엔 기사도 자처한다. 지난해 어버이날에는 마을회관에 모여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돼지 불고기, 장조림, 부침개 같은 것을 만들어 수시로 나눈다. 서 사모는 “많이 가졌기에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교회와 마을 사이 오간 사랑과 돌봄

마을회관에서 할머니들 얼굴에 마스크팩을 붙여주고 있는 박 목사.

박 목사 부부의 심방 코스는 딸기밭과 씨감자 밭을 돌면서 간식을 나누는 거로 시작한다. 그리고 마을회관에 들른다. 기자와 동행한 목사 부부는 마을회관에서 쉬는 어르신에게 마스크팩으로 웃음을 안겼다. 얼굴에 얹으면 동물 얼굴이 나오는 재밌는 모양을 일부러 준비했다. 박 목사가 “10년은 더 젊어지실 거유”라고 너스레를 떨며 토끼 호랑이 얼굴이 나오는 마스크팩을 붙이자, 어르신들은 소녀처럼 깔깔댔다. 전금남(83) 할머니는 “24세 시집와서 지금까지 이렇게 친구처럼 지내는 목사님은 처음”이라고 했다. 강추남(75) 할머니도 “우리 말동무도 돼 주고 심심하지 않게 해주니 마을 분위기가 확 좋아졌다”고 칭찬했다.

박 목사 부부가 어르신들에게 자식 역할을 한다면, 그들은 젊은 부부 가정을 아들·딸처럼 챙긴다. ‘사모님 생일’이라며 직접 밥을 해 온 이도, 직접 딴 것이라며 집 앞에 딸기며, 상추며 먹을거리를 놓고 가는 이웃도 숱하다. 박 목사는 “우리 교회와 마을은 사랑과 돌봄의 순환 속에 있다”고 자평했다.

박 목사와 함께 윗마을 전도 나온 아들 수호를 보고 ‘손주가 타던 자전거’를 선물한 할아버지도 있다. 킥보드를 타고 따라 온 아이가 꼭 손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마을의 유일한 어린이이자, 미성년자인 수호는 어르신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고 있다. 서 사모는 “서울에선 낯을 엄청나게 가렸는데, 이젠 이웃과 스스럼없이 지낸다”고 했다.

살려고 내려간 곳서 희망 만나다

박 목사와 아들 수호군이 한 비닐하우스 딸기밭에서 일하시는 할머니들에게 간식을 전해주는 모습.

박 목사 부부는 이곳에 ‘살기 위해’ 내려왔다. 부산의 한 대형교회에서 부목사로 바쁘게 일하고, 이후 교회를 개척하던 중 박 목사에게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서 사모는 “이러다가 남편을 잃겠다 싶었다”며 시골행을 제안했다. 남들에게 사랑을 퍼주고, 정작 자신을 돌보진 못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목원대 신학과 캠퍼스 커플이었다.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받은 사랑 덕분인지 박 목사 가정은 서서히 평안을 찾아갔다. 시골에 내려온 뒤 둘째도 자연스레 생겼다. 현재 임신 6개월 차다.

박 목사는 나이가 들어가는 어르신들을 위해 목회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한다. 지난 1년 새 어르신 네 분이 세상을 떠났다. 박 목사는 교인 여부를 떠나 마을 주민의 일원으로서 유가족을 찾아가 위로하고 있다.

박 목사는 “지난 성탄절에 예수님 생일잔치라며 떡국을 끓여 동네 어르신을 초대했는데 세 분이나 새로 오셨다”며 “90년 가까이 살면서 교회 문턱 처음 넘었다는 한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 성공한 목회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웃었다. 이어 “서로 사랑하고 관계를 맺으며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며 “우리가 이웃을 돌보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다”라고 강조했다.




논산=글·사진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