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중도 전쟁

입력 2025-03-24 00:38

민주당 중도이슈 주도하는데
강성보수 결집에 지체된 국힘
대선 앞 결단의 기로에 섰다

중도 표심을 잡는 이가 선거에서 이긴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확고한 내 편과 확고한 적의 편이 팽팽히 맞선 상황에선 더 그렇다. 아직 누구 편에 설지 정하지 않은 이들의 마음을 사야 한다. 전국 표심이 한꺼번에 모이는 대선은 어찌 보면 뚜렷한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중도 전쟁’을 벌이는 것과 같다.

국민의힘은 그 전쟁에서 지고 있다. 중도층이 등을 돌리기 시작한 시점은 여론 조사상 지난달 중순이다. 지난달 11~13일 한국갤럽의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국민의힘은 39%, 더불어민주당은 38%로 팽팽했다. 그런데 그 직후 이뤄진 18~20일 조사에서 국민의힘 정당 지지도는 34%, 민주당은 40%로 나타났다. 민주당 우세로 여론이 돌아선 것이다.

기저에는 중도층의 이반이 있었다. 지난달 11~13일 조사에서 중도층의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32%, 민주당 37%였다. 그런데 18~20일 조사에선 국민의힘 22%, 민주당 42%로 집계됐다. 일주일 만에 격차가 5% 포인트에서 20% 포인트로 벌어졌다. 국민의힘은 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18~20일 조사에서도 양당의 중도층 정당 지지도는 17% 포인트 차이였다. 여전히 민주당이 앞서고 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이 중도로 뻗어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강성 보수의 결집 현상 때문이다. 계엄에는 여권 대다수가 동의하지 못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은 또 다른 문제였다. 여기서 더 밀리면 박근혜 전 대통령 때의 전철을 밟는다는 위기감이 공유됐다. 그 위기감은 일단 윤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충성심으로 변질됐다. 보수는 뭉쳤고, 동시에 민주당은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탄핵하면서 여론의 강한 반감을 샀다. 대통령이 탄핵됐는데도 지난해 12월 말 여당 지지율은 급반등해 민주당과 팽팽한 구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보수 결집 효과는 딱 여기까지다. 지금은 여당의 확장성을 방해하는 족쇄로 작용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부터 ‘중보 보수론’까지 주장하면서 우클릭을 하는데, 여권은 ‘반탄’(탄핵 반대) 강성 보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됐다. 반탄 집회의 목소리는 탄핵 선고를 앞두고 더 거칠어지고 있다. 중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일부 여당 의원들이 그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여권은 오히려 전선을 뒤로 물리는 형국이다.

더 큰 문제는 여권 대선 주자들의 운신의 폭이 그만큼 줄었다는 점이다. 현재로선 강성 보수층의 입맛에 맞는 행보를 할 수밖에 없다. 치열할 것으로 전망되는 당내 경선을 통과하는 것이 우선순위여서다.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사실상 결정된 이 대표가 세법 개정, 정년 연장 등 중도층을 겨냥한 정책 이슈를 주도하는 것과 대비된다.

실제 주요 여권 대선 주자 중 확장성이 있다고 평가받는 오세훈 서울시장, 한동훈 전 대표는 강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내부에서는 “경선 승리를 위해 오 시장의 특장점인 중도 이미지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정치 행보를 재개한 뒤부터 윤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여당 내부에서도 위기감이 감지된다. 다만 홍준표 대구시장은 “중도 확장은 자기 노선이 분명할 때 가능하다”며 “스윙보터들은 언제나 강자 편에 붙는다”고 일갈했다. 지금 강자가 국민의힘인가.

윤 대통령이 파면된다면 상황이 나아질까. 헌재를 공격하는 강성 보수의 목소리는 더 커질지언정 작아지지 않을 것이다. 내란죄 재판도 계속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펼쳐질 여당의 대선 경선은 국민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로선 국민의힘이 중도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누가 후보로 선출되든 갈라진 여권을 통합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윤 대통령과 함께 대선을 치르는 길은 또 다른 찬탄·반탄 대립의 길이다. 윤 대통령을 포함해 여권은 결단의 기로에 섰다.

문동성 사회2부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