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돌봄’ 한계 인정하고, 사회·국가가 함께 책임을

입력 2025-03-24 23:07

‘헬스장 청소로 생계를 이어가던 60대 청각장애 어머니를 마중 나왔던 40대 지체장애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어머니는 숨지고 아들은 중상을 입었다. 전동 휠체어를 타던 아들은 어머니를 편히 모시기 위해 무릎 위에 앉도록 한 뒤 이동하다가 사고를… 경찰은 보도블록이 울퉁불퉁한 데다 가로수와 소화전 등으로 인도로 가기 어려워 차도를 이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몇 년 전 국민일보에 실렸던 가슴 아픈 기사다.

장애인에게 가족은 무엇일까. 가족은 경제적 부양과 심리적 지지를 맡아 주는 존재다. 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장 정확히 이해하고 제공해 주는 돌봄의 일차적 제공자이기도 하다. 많은 중증 장애인에게 가족은 문자 그대로 삶의 기반이다.

그러나 장애인 가족의 삶은 쉬운 것이 아니다. 가족들은 장애인에 대해 애정을 느끼는 동시에 책임감과 죄책감, 보람과 부담의 양가 감정을 갖고 있다. 돌봄의 부담이 커지면 자신의 생활에 어려움도 커진다. 때로는 장애인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포기하기도 한다. 전형적으로 최중증 장애인의 어머니와 아내가 그렇다.

가족의 희생을 언제까지나 미화하고 지나갈 수는 없다. 가족의 돌봄이 가장 좋은 돌봄일 수 있고 가족의 역할이 존중돼야 한다는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가족에게 책임을 은근슬쩍 미루고 사회적 책임을 한없이 연기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가족이 맡아야 할 돌봄의 한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을 돌보기 위해 가족이 자신의 삶을 버리게 해서는 안 된다. 장애인을 위해 들이는 비용 때문에 가계가 가난에 빠져서는 안 된다.

가족의 돌봄 노동은 자기의 삶을 희생하지 않는 선에서, 가계의 돌봄 비용은 기존의 생활 수준을 떨어뜨리지 않는 수준으로 제한돼야 한다. 가족들의 역할은 장애인과의 정서적 유대감, 안정감, 안전과 보호, 긴급 대처, 대리 결정 등 가족만이 할 수 있는 일로 국한돼야 한다.

그 이상의 역할은 지역사회 돌봄을 통해 나라와 사회가 책임을 맡아 주어야 한다. 노인 부모를 노인 자식이 모시는 ‘노노 돌봄’이니, 아직 직장에 자리도 잡지 못한 어린 자식이 부모를 모셔야 하는 ‘영 케어러’ 같은 일이나, 심지어 돌봄 부담을 견디지 못해 장애인이나 노인을 죽여야 하는 ‘간병 살인’ 같은 일이 더 이상 방치될 수는 없다. 가족 돌봄은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재)돌봄과 미래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