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덮은 ‘목회자의 슬픔’… 마음의 병에서 벗어나려면

입력 2025-03-24 05:01
게티이미지뱅크

경기도 양주의 A감리교회 B목사는 지난달 아내를 떠나보냈다.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로 만나 40년을 함께했다. 단순한 배우자가 아니었다. 사역의 동역자였고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하지만 아내가 떠난 순간에도 그는 목사였다.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다. 교인들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뒤 불 꺼진 방에 홀로 앉아 있으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B목사는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새벽기도를 마친 이후나 잠들기 전에 눈물 속에 아내를 떠올리곤 한다”고 전했다.

한국교회 다수의 목회자에겐 상처(喪妻)가 상처(傷處)가 된다. 애도를 나눌 환경이 마련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목회자들은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며 “스스로 신앙과 상담의 전문가라고 여기므로 외부의 도움을 받는 일이 드물고 애도 과정을 혼자 해결하려다 보니 상실의 고통이 길어지고 우울감이 가중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애도 과정이 원활하지 않으면 정신적 고통이 장기화할 수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정신질환 진단 기준(DSM-5-TR)에 ‘지속적 애도 장애’라는 진단명이 새롭게 포함됐다”며 “1년 이상 심한 슬픔이 계속되고 삶의 기능이 떨어질 때 진단된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슬픔은 충분히 슬퍼해야 잘 극복할 수 있다”며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임상심리학 박사인 노상헌 남서울예수교회 목사는 “슬픔은 우리가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는 증거”라며 “그 감정은 억누르거나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되새기고 존중해야 할 귀한 정서”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남성 목회자들은 일 중심의 삶에 익숙하고 관계적 친밀감이 부족해 상실의 감정을 깊이 경험하지 못하거나 그것을 신앙적 부족함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슬픔을 신앙으로 덮으려 할수록 오히려 그 골은 깊어지고 또 다른 상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8일 한국애도상담협회(회장 유혜진)가 주최한 온라인 특강에서는 건강한 애도 방법이 소개됐다. 슬픔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부터 강조됐다. 유혜진 회장은 “예수님도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며 “목회자는 눈물을 참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와 감정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혼자만의 애도는 고립감을 키울 수 있다. 애도의 과정을 기록하는 것 역시 도움이 된다. 유 회장은 “감정을 일기처럼 정리하다 보면 슬픔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실을 경험한 목회자 중에는 사역을 통해 아픔을 잊으려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오히려 장기적인 상처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유 회장은 “일정 기간은 자신을 돌보고 내면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슬픔을 외면한 채 바쁘게 움직이기만 하면 결국 어느 순간 더 깊은 우울감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와 상담을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외부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시간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유 회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리 애도를 배우는 것”이라며 “목회자라면 누군가를 위로해야 할 순간이 많다. 애도 과정을 깊이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애도를 배우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교회 공동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손철우 백석대 상담대학원 교수는 “목회자만큼 장례식 현장에 자주 가는 직군이 많지 않다”며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적절한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해 곤란해하는 목회자들도 있다”고 전했다. 손 교수는 “장례식장에서 너무 희망만 말하지 말라”며 “목사가 슬픔을 다룰 능력이 없으면 종교적 언어로 ‘천국엔 슬픔이 없다’고만 말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가족이 우는 이유는 천국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기 때문”이라며 “교회 공동체가 ‘울어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