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트럼프 쇼크와 자유주의 국제질서 2.0

입력 2025-03-24 00:32

트럼프가 직면한 미국의 고민
2개의 전쟁, 엄청난 재정적자

중동과 유럽 개입 최소화하고
중국 견제 집중하는 전략 모색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 저물고
한국 일본 비용분담 강화하는
글로벌 투캅스 모델 시작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이후 외교 분야에서 최대 뉴스는 지난달 28일 있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 파행이었다. 유럽 정상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미국이 침략자 러시아의 논리를 옹호하고, 약소국 우크라이나에 일방적 양보를 강요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종말을 우려한다. 국제정치학의 냉혹함을 환기시키며 ‘각자도생 시대’가 도래했음을 주장한다. 부분적으로 일리 있지만 아직은 섣부른 예측이다. 한국의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미국의 고민’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동현 미국의소리 기자가 쓴 책 ‘우리는 미국을 모른다’는 펜타곤의 시각과 고민을 잘 보여준다. 미국의 고민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미국 국력으로 중국과 러시아 두 나라를 동시에 상대하는 게 가능한가. 둘째, 엄청난 재정 적자와 국채의 천문학적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

첫째, 중국은 경제 대국이며 러시아는 군사 강국이다. 2023년 기준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4조 달러이고 중국은 18조 달러다. 미국 경제력을 100으로 하면 중국은 75% 수준이다. 게다가 미국의 성장률은 2% 내외인데 중국은 5% 내외다. 10~20년 후 GDP 역전 가능성이 유력하다. 러시아는 핵무기 강국이다. 미국은 약 5000개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러시아에는 약 6000개가 있다. 미국 입장에서 중국과 러시아 모두를 상대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둘째, 미국은 국채 발행 이자비용이 ‘천조국’인 나라가 됐다. 원래 천조국이란 표현은 미국 국방비가 원화로 환산하면 1000조원이 넘는 것에서 유래했다. 2024년 기준 1년간 지출한 국채 발행 이자비용만 약 1270조원(8820억 달러)이다. 미국 의회예산국에 의하면 미국의 국가부채 규모는 35조7000억 달러(약 4경8000조원) 수준이며, GDP 대비 연방정부 부채비율은 124%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지위조차 위태로워질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 새로운 돌파구 모색이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해법은 예산 감축을 위한 공무원 해고, 작은 정부 실현, 과감한 국방비 축소다. 국방비 축소를 위해서는 미군의 해외 개입을 축소하고 동맹국에 더 많은 ‘안보비용 분담’을 요구해야 한다.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은 크게 세 지역이었다. 중동, 유럽, 아시아다. 이들 지역의 안보전략 재조정이 필요해졌다. 중동은 2010년대 셰일혁명 이후 중요성이 감소됐다. 유럽은 나토 회원국들이 국방비를 늘리고, ‘재무장’을 해주면 미국에도 좋은 일이다. 아시아는 중국 견제 중요성이 오히려 커졌다. 미국의 대외안보 전략은 중동과 유럽에 대한 개입 최소화, 중국 견제 집중으로 요약된다.

미국이 유럽 방위에서 빠지면 유럽은 위태로워질까. 그렇지 않다. 러시아는 핵 강국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위협적이지 않다. 러시아 GDP는 한국과 비슷하고, 인구는 일본과 비슷하다. 다만 러시아는 핵무기가 6000개 있다. 유럽연합 GDP는 약 19조 달러다. 러시아의 10배 규모다. 유럽이 재무장한다면 유럽 단독으로 러시아 견제는 충분히 가능하다.

탈냉전 이후 유럽 복지국가는 미국의 국방비로 가능했다. 국방비로 유럽은 미국의 3분의 1 수준만 지출하며 미국에 대해 ‘안보 무임승차’를 했다. 그러나 트럼프 쇼크로 유럽이 바뀌었다. 최근 유럽 재무장 계획을 밝혔다. 5년 안으로 1300조원 규모의 군사비 증강을 완료한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효과’다.

미국의 중국 견제는 더욱 중요해졌다. 다만 아시아에는 4개의 부자 나라 일본, 한국, 호주, 대만이 있다. 일본, 한국, 호주의 GDP 합계는 7조5000억 달러다. 미국은 이들 나라에 더 많은 ‘안보비용 분담’을 요구할 것이다.

팍스아메리카나 시대는 ‘미국 나홀로 경찰’ 모델이었다. 미국의 상대적 쇠퇴로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됐다. 트럼프의 목표는 이를테면 ‘글로벌 투갑스 모델’이다. 러시아의 위협은 유럽연합이 담당하고, 미국은 중국 견제에 집중하되 일본, 한국, 호주의 비용 분담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국익 관점에서도 수용 가능한 모델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붕괴’라는 진단은 아직 섣부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2.0’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