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일본 쌀값 폭등의 숨은 이유

입력 2025-03-24 00:35

일본에서 쌀값 폭등이 서민의 식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21세기에 옛 보릿고개 추억을 연상시킨다. 충분한 공급이 있는데 쌀이 매장에서 부족하다는 이유는 ①유통업자와 농가의 매점매석, ②방일 외국인의 인바운드 소비, ③난카이 대지진 공포에 따른 사재기 등이 꼽힌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사실이어도 소동의 주 요인은 아니다.

지난해 여름 슈퍼마켓 매장에서 쌀이 없어졌을 때도 농림수산성은 “쌀은 충분하다”고 주장했는데, 쌀값이 사상 최고치인 지금까지 이 자세를 관철하고 있다. 대책으로 내놓은 비축미 반출도 쌀 부족 때문이 아니라 업자들의 투기를 막아 유통을 원활히 하는 마중물 역할이라고 했다. 그러나 근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쌀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이제부터 조사하겠다고 할 뿐이다.

그렇지만 쌀이 사라졌다는 주장은 무리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첫째, 숨기고 있는 쌀을 보관하는 데는 큰 비용이 든다. 둘째, 매점매석은 장래 높게 팔릴 거라는 전망이 있어야 하는데 쌀값은 현재 사상 최고 수준이다. 셋째, 매월 여행자 300만명이 일본에 7일간 체류하며 쌀을 먹어도 소비량 증가는 0.5%, 3만t에 불과하다. 결국 결론은 ‘사라진 쌀은 없다’는 것이다. 2023년 무더위로 공급이 40만t 부족해지면서 매장에서 쌀이 사라졌다. 하지만 근본적 원인은 농림수산성의 농지 축소 정책에 의한 쌀 생산량의 계속적인 감소가 꼽혔다. 농지 축소란 농가에 보조금을 주고 쌀 공급을 줄여 쌀값을 올리는 것이다. 왜 일본 정부는 농지 축소 정책에 집착하는가. 그것은 외국에는 없고 일본에만 있는 ‘JA농협’ 때문이다.

종전 직후 식량난 시대에 일본 정부는 식량관리법에 의해 농가로부터 쌀을 매입해 소비자에게 싸게 제공했다. 배급제라고 하는데, 덕분에 궁핍한 사람도 쌀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농가는 비싼 가격으로 암시장에 쌀을 흘려보내 배급제를 운용하는 정부에 쌀이 모이지 않았다. 때문에 농림수산성은 전쟁 전 통제 단체를 JA농협으로 새로 단장하고, 농가로부터 쌀을 모아 정부에 공출토록 했다. 이것이 JA농협의 시초다.

이 경우 쌀값은 시장에서 수요·공급의 균형으로 정해지지 않고 정부가 인위적으로 결정한다. 의도적으로 가격을 높이면 수요는 줄고 공급이 늘어 과잉이 발생한다. 정부는 방대한 과잉미를 3조엔이나 들여 처분했다. 1970년부터 생산을 감소시키고 정부 매입량을 줄이면서 농가에 보조금을 주게 됐다. 이것이 ‘농지 축소’ 정책의 시작이다.

쌀값이 높아지면 JA농협의 판매 수수료도 늘어난다. 농업은 쇠퇴하는데 JA농협은 일본 유수의 거대 은행이자 최고·최대급 기관투자가로 발전했다. 높은 쌀값과 농지 축소 정책은 JA농협 번영의 기초가 됐고, 농림수산성과 농림족 의원이 기득권에 의존했다. 이 JA농협, 농림수산성, 농림족 의원의 이익공동체를 ‘농정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른다.

JA농협은 농민표를 모아 농림족 의원을 당선시키고, 농림족 의원은 농림수산성에 높은 쌀값과 농산물 관세를 유지시키며 농업 예산을 획득케 한다. 이는 다시 영세 농가의 겸업 수입으로 이어지고, 이를 활용한 JA농협은 거대 은행으로 발전한다. 그렇다고 자민당 농림족 의원보다 야당인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공산당이 나을 것도 없다. 식량관리제의 시대 자민당이 쌀값을 5% 올리라고 하면 야당인 사회당은 10% 올리라고 하고, 공산당은 15% 올리라는 도식이 있었다. 여야를 불문하고 농업 정책에 농가 표를 우선시했다. 식료품소비세 제로 세율을 내세우는 입헌민주당도 농지 축소, 높은 쌀값 정책에는 무관심하다. 쌀 파동이 쉽게 수습될 성질의 것이 아님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의 엥겔계수는 선진국 중에서 최고로 상승 중이다.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명예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