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튼 맨발에 로션 발라주고 외투도 벗어줘… 마치 예수님이 감싸주는 것 같은 기분이야”

입력 2025-03-24 05:03
노숙인 A씨가 최근 서울역 무료급식소 아침애만나에서 봉사자에게 지난달 26일 지하철에서 한 중년 여성에게 받은 외투와 여성이 베푼 선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른쪽은 그 외투에 들어있던 2만원. 아침애만나 제공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그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그분이 벗어준 외투를 매일 입어요. 마치 하나님과 예수님이 감싸주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한 중년 여성이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노숙인에게 다가가 부르튼 맨발에 로션을 발라주고 겉옷도 내어줬다. 상상치 못한 선행을 경험한 노숙인은 “어떻게든 감사를 전하고 싶다”며 자신이 매일 찾는 무료 급식소 봉사자들에게 사연을 털어놓았다.

23일 이랜드복지재단이 교회 6곳과 함께 운영하는 서울역 무료급식소 ‘아침애만나’에 따르면 노숙인 A씨(66)씨 지난달 26일 인천공항에서 서울역으로 오는 지하철에서 40~50대 정도의 중년 여성을 만났다. 오전 7시부터 8시30분까지 배식 시간을 맞추기 위해 첫차를 타고 오던 중이었다고 한다. 눈을 감고 있던 A씨는 누군가 자신의 손과 발을 만지는 것에 놀라 눈을 떴다. 한 여성이 무릎을 꿇고 앉아 A씨 발에 핸드크림을 발라주고 있었다. A씨는 한겨울에도 맨발에 슬리퍼만 신어 손과 발이 모두 부르튼 상태였다. 여성은 한사코 거절하던 A씨에게 2만원과 핸드크림이 든 외투를 벗어두고 내렸다.

선행을 경험한 A씨는 무료급식소에 오자마자 봉사자에게 지하철에서 “천사를 만났다”고 자랑했다. 그 여성과 잠깐 대화하던 중 ‘인천 필그림교회에 다닌다’고 말했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A씨는 무료급식소 봉사자들이 대부분 교회에 다니는 만큼 이들에게라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A씨는 매일 아침 아침애만나 시설장인 구재영 하늘소망교회 목사가 인도하는 짧은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이 사연은 필그림교회 김형석 담임목사에게도 전해졌다. 김 목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런 분이 우리 교회 성도님이신 게 참 고마웠다. 더 좋은 목사가 되라고 격려해주시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다만 미담의 주인공을 찾진 않았다. 김 목사는 “지난 9일 설교에서 ‘하나님이 다 아실 테니, 그 성도님이 굳이 누구인지 찾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전했다”고 부연했다.

이 교회 교인이 노숙인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간 건 평소 사역과 무관치 않다. 교회는 일주일에 사흘 아침애만나 배식 봉사를 맡고 있다. 인천의 교회 5곳이 모인 초교파 모임 ‘마가의 다락방’의 일원이기도 하다. 교인들은 코로나19 당시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았을 때 노숙인과 쪽방촌에 도시락 나눔 사역을 하기도 했다. 김 목사는 “성도에게 일 년에 한 번 배식 봉사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