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재생목록에서 건강 콘텐츠가 차지하는 지분이 날로 늘어간다. 몸 어딘가가 고장난 것도 아닌데 ‘의사는 매일 ○○를 먹는다’ 같은 제목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꼭 눌러본다. 알고리즘은 이것이 내 관심사라고 확신했는지 쉴새 없이 관련 영상을 추천한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개인 채널을 만들어 운영하는 시대이다보니 집에 가만히 누워 현직 의사·약사들에게서 생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건 분명 행운일 테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이들이 특정 논문이나 의학 용어를 언급할수록 어쩐지 내가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사람이 된 것 같은 만족감은 덤이다.
그런데 뭐든 과한 게 탈인걸까. 건강하게 살기 위해 수많은 정보를 주입할수록 일상 곳곳이 지뢰밭이다. 일주일 중 대부분의 식사를 밖에서 해결하는 나는 자연히 흰쌀밥, 튀긴 음식, 가공육, 각종 맵고 짜고 단 음식에 노출된다. 과거에는 ‘자극적인 음식은 몸에 좋지 않다’는 정도의 상식을 바탕으로 식사를 대했지만 이제는 밥상 앞에서 ‘혈당 스파이크’(식후 급격히 혈당이 치솟다 빠르게 떨어지는 것)라는 단어부터 떠오른다. 주스는 과도한 액상과당이 당뇨를 유발할까봐 걱정, 햄은 식품첨가물이 많아 심혈관 질환을 유발할까봐 걱정, 흰 빵은 나쁜 콜레스테롤을 높일까봐 걱정, 야채는 잔류농약까지 먹게 될까봐 걱정…. 건강을 위해 식단을 관리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단편적인 정보가 켜켜이 쌓여 막연한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음을 느낀다.
하루는 유튜브에 ‘식용유 추천’을 검색했다가 이내 후회했다. 단지 식용유 살 때가 되어 제품 정보가 필요했을 뿐인데 유튜브는 식용유에 쓰이는 유전자변형(GMO) 작물 논란으로 나를 안내했다. GMO 작물의 인체 위해성 논란은 2000년대 초반부터 지속된 해묵은 주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수많은 연구가 GMO 작물이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고, 국내에서 판매되는 관련 제품도 안전성을 모두 확인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이런 식용유는 절대 먹지 말라’는 식의 제목을 홀린듯 누르다 보니 마음속에 남은 건 진한 찜찜함이었다.
사실 대표적인 GMO 작물은 대두 다. 콩은 건강을 위해 꼭 먹어야 하는 대표 건강식품이기도 하다. 혹시 모를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GMO 작물은 절대 먹지 않겠노라 결심해도 식당에서 쓰는 기름이나 GMO 재료까지 일일이 따져가며 메뉴를 고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다수 전문가들은 아보카도유를 착한 기름으로 언급하는데, 아보카도는 재배하는 데 워낙 물이 많이 필요해 한때 재배 지역 주민들이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재배를 위해 무분별하게 산림을 훼손하는 문제가 고발되며 환경 파괴 이미지가 덧씌워진 과일이기도 하다.
손쉽게 얻는 과잉 정보 속에서 ‘무엇이 맞는 것인가’ 혼란을 겪는 일은 이외에도 수두룩하다. 유행처럼 번지다 이제는 대세가 돼 버린 ‘대체당’은 어떨까. 제로 칼로리를 내세우며 설탕의 자리를 꿰찼지만 실제로는 대체당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기에 대한 연구도 현재진행형이다. 미세플라스틱도 마찬가지다. 미세플라스틱을 먹은 생선과 플라스틱 비닐로 포장된 가공육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골라야 할까. 술과 커피의 인체 위해성에 대해서도 여전히 새로운 연구가 나오는 것처럼 ‘과학적’ 근거를 가진 ‘전문적’인 정보들은 앞으로도 계속 등장하고 그때마다 새로운 권고, 혹은 경고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내 눈앞에 도달했는지 알 수 없으니 이런 정보들은 더욱 귀를 솔깃하게 한다. 그리고 매번 시험에 든다. 일종의 ‘건강 밸런스게임’이다.
“건강한 나이듦을 만드는 데 있어서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중용’이다. 무엇이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다.” 최근 ‘저속 노화’라는 키워드로 건강식 열풍을 불러일으킨 정희원 교수는 ‘느리게 나이드는 습관’이라는 책에서 거듭 중용을 강조한다. 흥미로운 건 정 교수가 이 책에서 단순당과 정제곡물을 피하는 건강 식단 내용보다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해 신체 활동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가 강조하는 운동은 걷기, 스트레칭, 사람과의 교류 같은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다. 어쩌면 건강에 가장 해로운 건 입맛대로 가공된 정보들만 취사선택해 그것을 유일한 상식이라고 믿어 버리는 것일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박상은 사회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