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타지에서 공부하거나 일하다 부모로부터 “건강 신경쓰고 몸조심하라”는 편지 받고 울었다는 어르신들의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과거 운동권 학생들은 시위나 도피를 할 때 “몸조심하라”는 말을 부모나 주변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따뜻하면서도 어쩔 때는 애타는 안부 메시지인 ‘몸조심하라’가 어느 순간 섬뜩한 협박 멘트로 통용되고 있다.
조직폭력배 세계에서 주로 쓰였는데 “밤길 조심하라” “뒤통수 조심하라” 등 여러 버전이 생겨났다. 일반인들도 종종 따라하곤 하나 단순히 말로 그치지 않는 경우가 있다. 2019년 자신의 음주운전을 신고한 피해자에게 “몸조심해라. 눈에 띄지 마라”를 말한 이가 협박죄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병원에서 간호사에게 문신한 팔을 접수대 위에 올려놓은 후 “몸조심하라”고 말했다가 협박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경우도 있다. 2013년엔 동료 폭력조직원을 호송하는 경찰관에게 “밤길 조심하라”고 했다가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도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국민이 체포할 수 있으니 몸조심하라”고 말했다. 임시 행정수반에게 이런 말을 할 정도니 권력의 무게추가 누구에게 있는지 실감케 한다. 희한한 건 이 대표와 ‘몸조심하라’의 조합이 전에도 종종 나타났다는 점이다.
공지영 작가는 2018년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 대표의 ‘사생활 스캔들’에 대해 이 대표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지인들로부터 몸조심하고 혼자 다니지 말라는 충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녹취록을 제보했다가 지병 등으로 숨진 A씨의 주변인사는 지인들에게 SNS에 “모두 몸조심하세요”라고 썼다. 지지율 1위의 유력 정치인이 ‘공포’ 이미지를 갖게 되는 건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이다. 나라의 대통령이 비상계엄으로, 입법 권력을 휘두르는 ‘여의도 대통령’이 막말로 국민을 실망케 했다. 지금 우리에겐 지도자 복이 없는 셈인가.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