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기관 3곳이어서 예산·정책 분산… 뮤지컬 전담기구 둬야”

입력 2025-03-21 02:11
이종규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이 지난 17일 서울 대학로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공연예술이자 콘텐츠 산업이라는 뮤지컬의 두 가지 가치를 모두 발전시키기 위해 일관성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한형 기자

뮤지컬은 21세기 들어 한국 공연계의 대표 선수가 됐다. 대중음악을 제외한 한국 공연 시장의 75%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뮤지컬이다. 창작 뮤지컬이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에 꾸준히 수출된 데 이어 최근엔 영국과 미국 등 뮤지컬 본고장의 문까지 두드리고 있다. 이제 뮤지컬은 K팝, 웹툰, 드라마, 영화에 이어 새로운 K콘텐츠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런 빠른 성장 덕분에 연극의 하위 분야에 속했던 뮤지컬은 2022년 공연법 개정에 따라 독립 장르가 됐다. 이에 따라 예술성과 상업성의 이중적 속성에 걸맞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뮤지컬계의 입장이다. 지난 2021년부터 한국뮤지컬협회를 이끄는 이종규 이사장을 지난 17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나 뮤지컬계의 현안과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이 이사장은 인터파크 공연음악사업본부장, 인터파크씨어터 대표 등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관련 계열사 대표직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 공연 시장의 규모와 뮤지컬 비중은?

“2024년 공연 시장의 규모는 매출액 기준으로 약 1조4500억원이다. 대중음악 7500억원, 뮤지컬 4650억원 순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공연 시장은 2023년 1조2696억원을 기록, 영화 시장을 80억 차이로 처음 추월한 이후 지난해 격차가 2500억원으로 더 벌어졌다. 영화 시장은 OTT 등의 대체로 위축된 데 비해 공연 시장은 실시간 현장성을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에 매년 성장하고 있다. 대중음악의 약진도 두드러졌는데, K팝과 트로트가 인기를 끌며 대규모 인원을 수용하는 운동장과 체육관에서 전국을 돌며 열린 덕분으로 풀이된다.”

-뮤지컬 시장의 성장은 계속될 것인가? 5000억원은 언제쯤 돌파할까?

“뮤지컬 시장은 2022년 4250억원으로 4000억원을 처음 돌파한 뒤 2023년 4590억원, 4650억원으로 상승세가 견조하다. 다만 5000억원을 바로 넘기기엔 당분간 모멘텀이 부족해 보인다. 뮤지컬 시장 규모가 커지려면 신규 콘텐츠 공급과 함께 인프라가 늘어야 하는데, 4월 개관하는 GS아트센터를 빼고는 시장에 영향을 끼치는 대형 공연장의 개관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향후 장기적으로 서계동 복합문화공간, 세운상가의 뮤지컬 클러스터, 제2 세종문화회관, 현대차 글로벌 비즈니스센터의 다목적 극장, 국립뮤지컬콤플렉스 등의 개관이 예상되는 만큼 성장 동력은 꾸준히 있는 셈이다.”

-뮤지컬이 독립 장르로 인정받은 이후 뮤지컬계가 추진하는 것은 무엇인가?

“뮤지컬은 공연예술이자 부가가치가 큰 콘텐츠 산업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 영화가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 세계적인 영화 시장을 구축했던 것처럼 뮤지컬도 유사한 법과 기관이 필요하다고 본다. 바로 뮤지컬산업진흥법 제정과 전담기구 설립이다. 현재 뮤지컬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세 기관에서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예산과 정책이 분산돼 있다 보니 통일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고 그 효과를 측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2023년 국회 김승수 의원 대표발의로 뮤지컬산업진흥법안이 상정됐는데, 회기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가 지난해 다시 발의됐다. 다만 전담기구 부분은 정부 관련 부처의 의견 등을 수렴해 ‘설치’가 아닌 ‘지정’으로 조정됐다. 대신 전담기구가 지정되면 전문성을 토대로 심의, 의결, 자문할 수 있는 뮤지컬산업진흥위원회를 두는 내용이 담겼다.”

-새로운 K콘텐츠로 꼽히는 창작뮤지컬의 해외 진출 상황은?

“뮤지컬계가 10여 년 전부터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꾸준히 해외 진출에 나섰다. 그 결과 일본과 중국에서 다수의 K뮤지컬이 라이센싱 또는 투어 형태로 공연됐다. 요즘 일본과 중국 제작사는 아예 우수한 한국 창작진을 초청해 작업한 뒤 자국과 한국에서 작품을 유통하기도 한다. 한국을 중심으로 ‘원 아시아 마켓’이 만들어지는 모양새다. 최근엔 전 세계 뮤지컬 시장의 심장부인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서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과 ‘마리 퀴리’가 현지 프로덕션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해외 진출에는 공적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2016년 시작된 ‘K-뮤지컬 로드쇼’는 한국 뮤지컬을 중화권·일본·영미권에 소개했으며, 2021년 시작된 ‘K-뮤지컬 국제마켓’은 국내외 뮤지컬 프로듀서, 투자자 등이 모이는 뮤지컬 장르 전문 마켓이다. 투트랙을 통해 한국 뮤지컬의 해외 진출, 현지 개발, 판권 계약, 투자 유치 등의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뮤지컬 창작 열기가 뜨겁지만, 막상 공연장이 없다는 말이 많은데….

“지난 10여 년간 뮤지컬계는 인프라 증가보다 콘텐츠 창작 증가가 압도적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이나 한국콘텐츠진흥원 창의인재 동반사업 등을 통해 신규 아이템이 연간 수십 개가 나온다. 하지만 상업적인 뮤지컬의 속성상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제작이 이뤄져야 하는데, 극히 일부만 본공연으로 이어진다. 창작뮤지컬 초연의 경우 흥행 리스크 때문에 제작사도 그렇지만 공연장 역시 꺼리게 된다. 그리고 요즘 대학로에서 규모 있는 공연장을 운영하는 티켓 사업자들은 티켓 판매와 연계된 흥행성 있는 작품 위주로 대관한다. 결국, 창작 초연만 올릴 수 있는 공공극장이 있어야 한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앞으로 건립될 서계동 복합문화공간 등에서 창작뮤지컬 초연을 올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문체부와 대구가 추진 중인 국립뮤지컬콤플렉스가 설립되면 창작뮤지컬 인큐베이팅 및 트라이아웃 공연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영국에선 스타 배우가 나오는 공연의 티켓 가격을 낮춰서 관객의 공연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높은 뮤지컬 티켓 가격이 대중화를 막고 있다. 스타 배우에 대한 과도한 개런티로 제작비가 올라갔기 때문 아닌가?

“현재 한국 뮤지컬 시장과 관련해 뼈아픈 질문이다. 최근 티켓 가격이 최고가 기준으로 19만원까지 올라갔다. 배우 개런티의 경우 한국 뮤지컬 시장이 단시간에 성장하다 보니 스타 배우 쏠림 현상이 심하다. 요즘 뮤지컬 제작비 가운데 배우 개런티가 평균 30%이고, 심한 경우엔 40%까지 올라간다. 다만 배우 개런티와 관련해선 아직 뾰족한 수가 없다. 그래도 스타 배우를 쓰지 않더라도 작품성만으로 인기를 얻는 뮤지컬도 많이 있다. 덧붙여 한동안 국내 제작사들이 해외 뮤지컬 판권을 놓고 과열 경쟁을 벌인 적도 많았지만 ‘공멸’이라는 인식 하에 점차 완화된 것처럼 배우 개런티 부분도 시장이 더 커지고 성숙해지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