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녀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타자다. ‘부모가 반팔자’라는 말도 있고 ‘나이가 30을 넘고도 부모 탓을 하는 것은 매력없다’는 제목의 글도 있지만 요즘 심리학적 지식이 양육자를 원망하는 근거가 되고 양육자로 하여금 자꾸만 자기 탓을 하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해보이지 않는다. 부모로서 조심할 것을 조심해야 하겠지만 부모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부모 본인이나 자녀나 인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에게는 100점을 요구하면서 자기 자신의 잘못은 인식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성찰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잘못이 인식의 사각지대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고 이를 의식할수록 타인에게 적용하는 논리를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어디서 논리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하는가를 파악하려 노력하다보면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부모-자녀 관계에서도 부모가 자신의 무의식을 보면서 자녀를 양육해야 자녀와의 소통이 원활해진다. 당연히 이 과정이 완벽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자녀는 부모님이 자기 자신의 무의식을 보면서 자녀인 자기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은 느끼고 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한 자신의 기대나 고정된 생각을 거두고 자녀의 존재 자체를 들여다보려는 눈물겨운 노력을 할 때 자녀는 부모의 그 노력을 사랑으로 받는다. 이 사랑이 바로 자녀를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반대로 부모가 자신의 무의식을 전혀 보지 않으면서 자녀에게 바라는 바가 많을 때 자녀는 부모에게 강력한 저항감을 표현하게 된다.
어떤 때는 너무 완벽한 부모 노릇을 하려는 이유가 사실은 본인의 부모에 대한 원망감 때문인 경우도 있다. ‘부모 노릇은 바로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보여주고 싶은 심정 말이다. 이런 욕심을 가지고 자녀 양육을 하는 경우에는 자녀가 따라와주지 않으면 자녀에게 자꾸만 화가 나게 된다. 예전의 나에 비하면 너는 얼마나 좋은 환경에 있는 건데 이걸 따라오지 않느냐고, 나는 내 부모가 이렇게 해주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밖에 못살고 있는데 너는 내가 환경을 마련해주는데도 왜 제대로 따라오지 않느냐고 화를 내게 된다.
부모는 ‘다 너를 위해서야’라는 정당화 속에 숨은 자신의 욕심을 들여다봐야 하는 것 같다. 자녀와의 관계는 부모의 인간적 약점을 파고들어 부모가 가장 견딜 수 없는 방식으로 문제를 일으켜서 도를 닦게 만든다. 그리하여 부모로 하여금 자신의 무의식을 봐내는 고통을 겪게 만든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부모 노릇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유이고, 자녀가 부모의 스승이라는 말까지 있는 이유다. 다른 관계라면 무의식을 견디는 고통이 힘들어 관계를 포기하게도 되지만 가족의 경우는 그럴 수 없기에 더 지지고 볶게 된다. 만약에 부모 노릇을 하면서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다면 이는 위험 신호다. 자녀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부모 노릇의 8할은 자신의 무의식을 보면서 자녀에 대한 기대와 욕심을 내려놓는 일인 듯하다.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