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하루 한 끼의 축복

입력 2025-03-22 00:38

겨울방학이 끝난 지 몇 주가 지났을 때쯤 아이 친구 엄마에게서 카카오톡이 왔다. ‘방학 잘 보낸 것을 축하하자’는 내용이었다. 중학교 입학 전 반드시 해야 할 공부를 마무리한 것에 대한 자축이 아니었다. 두 달 동안 함께 아이들 점심을 해결한 것에 대한 안도였다. 두 집은 ‘점심 품앗이’를 한 ‘밥 동지’였다.

아이 둘과 엄마 둘이 있는 단톡방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아파트 동·호수를 적어 단톡방 이름을 지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누는 얘기는 한결같았다. 아이들은 점심 메뉴를 고르고, 엄마들은 그걸 주문했다. ‘몇 시쯤 도착하니 맛있게 먹어라’는 붙임말이 다였다. 아이가 혼자였다면 실행하지 못할 계획이었다. 배보다 배꼽이 큰 배달 앱 수수료가 마음에 걸렸고 배달음식을 매일 홀로 먹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텅 빈 집에 아이만 혼자 있는 비슷한 처지의 이웃이 있다는 것도 큰 위안이 됐다. 방학이 끝났지만, 우리는 가끔 아이의 끼니를 부탁한다.

아이의 눈에도 그런 이웃이 남다르게 보였나 보다. 몇 발짝 떨어진 옆집이지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게 흔한 세상에 사는 아이에게 가족처럼 매일 밥상에 함께 앉는 일은 좀체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요즘 우리 가족이 정주행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자주 나오는 장면과 방학 내 풍경이 겹쳐 보였다. 1980년대 서울 도봉구 쌍문동 좁은 골목길에 사는 이웃들은 수시로 반찬을 나누고 끼니를 함께 해결한다. ‘우리 집이랑 ○○이네랑 비슷하지 않냐’는 별 뜻 없는 아이의 말에 웃음이 났다. 일하다가 배달시키는 걸 까먹고 전전긍긍했던 순간은 온데간데없고 따뜻한 추억만 남았다.

최근에 취재 차 갔던 서울의 한 어르신복지관에서도 함께 끼니를 나누며 행복을 누리는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어르신들은 이미 그곳에 계셨다. 복지관 관계자는 “급식 선생님이 아침 7시가 되기 전 오시는데, 그때도 몇몇 어르신들이 있다”고 귀띔했다. 그분들에게 그날의 점심은 끼니를 때우는 것 이상이었을 수 있다. 홀로 사는 이에겐 더욱 그렇겠다. 지역문화진흥원의 2023년 사회적 연결성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20%는 거의 매일 혼자 식사하며, 이 비율은 1인 가구에서 60%로 늘어난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개인이 느끼는 고립감이 높아진다는 수치는 여러 사회 지표에서 드러난다.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이에겐 하루 중 유일한 대화이며, 세상과 가느다란 연결고리일 수 있다.

지난해 10월 기자가 찾았던 강원도 원주의 청소년 전용 천원 식당에서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 밖이 어둑해지면서 중고등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석식당 사장인 최현석 정류장교회 목사와 사모, 처제, 봉사자가 정성껏 차려낸 저녁을 누군가와 마주 앉아 먹었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거리나 편의점에서 대충 허기만 때울 수 있던 위기 청소년이 대다수였다.

수년째 사례비를 받지 못하는 한 목회자가 외롭고 고단한 이주민들에게 주일 식사마다 고기반찬을 올린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비슷한 마음이 일었다. 일요일에도 일해야 하는 이들을 위해 일부러 저녁 예배를 드리며,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끼리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게끔 자리를 준비하는 교회의 진심이 전해졌다.

하루하루를 전투하는 것처럼 버틴 방학 점심 품앗이가 달리 보인다. 고난이 아니라 축복이었다. 가까이 사는 누군가에게 매일 인사하거나 함께 앉아 나눠 먹는 일이 무척이나 어색해진 요즘, 우리는 거의 매일 그 일을 하며 서로의 온기를 확인했다. 국민일보는 이웃과 온기를 나누고, 그 과정에서 끊어진 관계가 이어지는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을 조명하는 연중 기획 ‘너와 나, 서로 돌봄’을 지난 18일 시작했다. 한 영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가 더 많은 이들에게 하루 한 끼 같은 축복을 전하려는 노력을 함께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

신은정 미션탐사부 차장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