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김치 남았니?” 겨울 지나고 이른 봄 즈음이면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온다. 행여 며느리가 불편해할까봐, 시어머니는 평소에 먼저 연락하지 않는 편이다. 김치를 핑계 삼아 목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리라. 갓김치 맛을 알고부터 나는 체기가 있으면 갓김치를 먼저 찾는다. 뜨끈한 이밥에 올린 갓김치 한 줄기. 그 알싸하고 매콤하며 개운한 맛. 갓 담근 김치는 향긋하고, 오래 묵힌 갓김치는 쿰쿰한 군내가 돌면서 감칠맛이 있다.
내게 갓김치 맛을 처음 알려준 사람은 시어머니다. 신혼 시절 어머니는 여수 돌산갓을 사다가 김치를 담가줬다.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얼굴로 시어머니 옆에서 갓을 손질했다. 붉은빛이 도는 홍갓이었다. 시어머니는 소금물에 갓을 절여 숨을 죽이고, 찹쌀풀죽을 쑤고 양념을 넣고 섞었다. 첫맛은 맵고 썼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맛인가 싶어서 자꾸 젓가락을 들다 보니, 톡 쏘는 맛 때문에 이내 갓김치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시어머니의 냉장고 안에는 칸칸이 김치가 그득했다. 봄에는 시원한 나박김치, 여름에는 아삭아삭한 열무김치, 가을에는 배추김치, 겨울에는 살얼음 낀 백김치로 꽉 채웠다. 때때로 요리는 노동이 될 때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때는 식구들 입에 달게 들어가는 음식을 보면서 뿌듯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때 음식을 만드는 일은 노동이라기보다 보람이요. 기꺼운 즐거움이었으리라.
몇 년 전 나는 우연한 계기로 시어머니가 시중에서 파는 갓김치를 보내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래 투병하는 동안 몸이 쇠약해진 탓에 손수 김장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부러 모른 척했다. 시중에서 파는 김치라도 어떠랴. 며느리를 생각해 매년 택배를 보내는 마음이 정다워 코가 시큰했다. 부디 당신의 건강도 여수의 푸르른 갓처럼 강인하고 억세게 회복되기를. 이제 얼마 안 남은 갓김치, 마지막 한 줄기까지 알뜰히 먹어야겠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