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가 최대 연례 행사에서 공개한 청사진이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2028년까지 매년 최신 AI 반도체를 선보이겠다고 18일(현지시간) 공언했지만, 참신한 소재가 부족했다는 지적과 함께 엔비디아 주가는 3% 이상 떨어졌다.
황 CEO는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GTC 2025’에서 올해 하반기부터 2028년까지 차세대 고성능그래픽처리장치(GPU)인 블랙웰 울트라와 루빈, 파인먼 시리즈를 차례로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기조연설에서 “AI 팩토리(엔비디아의 특수 데이터센터)에서 블랙웰의 성능은 (이전 칩인) H100보다 68배, 루빈은 900배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앞서 황 CEO가 이번 행사에서 루빈의 개발 현황을 설명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었다. 그러나 새로 공개한 파인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엔비디아는 GPU 성능을 높이기 위해 핵심 부품인 최신 고대역폭메모리(HBM) 탑재량을 늘릴 방침이다. 현재 블랙웰에 들어가는 HBM3E(5세대)의 용량은 192GB이지만, 하반기 출시될 블랙웰 울트라는 288GB로 늘어난다. 2027년 하반기에 공개될 ‘루빈 울트라’에는 1TB의 HBM4E(7세대)가 탑재될 예정이다. 최신 HBM를 공급하기 위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로봇 플랫폼 사업 현황도 소개됐다. 엔비디아는 구글 딥마인드, 디즈니 리서치와 협력해 물리 엔진(physics engin) ‘뉴튼’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물리 엔진이란 로봇 개발을 위한 소프트웨어의 한 종류다. 뉴튼은 올해 하반기 오픈소스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날 기조연설 무대에는 디즈니가 스타워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2족 보행 로봇 ‘BDX 드로이드’가 등장했다. 뉴튼은 이 로봇에 먼저 적용한다. 엔비디아는 로봇 개발 파운데이션 모델을 세계 최초로 오픈소스에 공개하기도 했다. ‘아이작 그루트 N1’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을 학습시키기 위한 기술이다. 기조연설 도중 이 모델을 적용한 로봇이 과일을 옮기는 등 집안일을 돕는 영상이 재생됐다.
이날 엔비디아 주가는 3.43% 하락 마감했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AI 관련 내용은 기존에 했던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며 “양자, 디지털 트윈 등 차세대 산업에 대한 언급은 일부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안소은 KB증권 연구원은 “시장 예상대로 GPU 로드맵 등이 공개됐지만, 주가를 끌어올릴 만한 동력이 되지 못했다”고 했다.
21일까지 열리는 올해 GTC에는 2만5000여명의 관람객이 모일 전망이다. 국내 기업 중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 AI연구원 등이 행사에 참가해 전시 부스를 마련했다.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는 SK하이닉스는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개발 중인 HBM4 12단 모형과 AI 서버용 메모리의 표준으로 떠오르는 ‘SOCAMM(저전력 D램 기반 메모리 모듈)’을 전시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