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에 싱글맘… “이 아픔 디딤돌 삼아 고통받는 이들 돌봐요”

입력 2025-03-20 05:17
박나오미 헝가리 선교사가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 스튜디오에서 자신이 선교사가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어린 시절 가정 폭력, 도피하듯 결혼했으나 임신하자 도망간 남편, 설상가상으로 받은 난치병 판정까지…. 인생을 살며 한 번도 당하기 힘든 고난을 도미노처럼 겪은 박나오미(55) 헝가리 선교사는 아픔을 통해 사는 게 힘든 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박 선교사는 20대 후반인 딸과 함께 11년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마음돌봄센터 ‘히어앤이야기(Here&Iyagi)’에서 상담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난 박 선교사는 자신을 ‘틈새 선교사’라고 표현했다. “고통의 틈새에 서서 남들이 하기 꺼리는 일을 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교회가 문을 닫는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도하다가 딸과 함께 에스겔 22장을 묵상했다”며 “틈에 서서 기도하고 예배하는 ‘틈새 선교사’가 되기로 했다”고 부연했다.

모녀는 아픔을 디딤돌 삼아 폭력에 노출되고 자살 위기를 겪는 이들을 보듬고, 실제 도움을 주고 있다. 박 선교사는 “헝가리 현지인 남자친구에게 성폭행 당해 장이 파열돼 장루 주머니를 차고 살아야 하는 한국 여성이 있었다”며 “선교 사역을 하며 형편이 넉넉하지는 못했으나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수술비를 보태고 한국 상담센터와 병원 등을 연결해줬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며 여성을 안아주자 내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고 전했다.

박 선교사가 해외 선교사역을 결심한 것은 난치병 진단을 받은 후다. 그는 “심장을 이식해야 할 만큼 심장벽이 두꺼워져 ‘시한폭탄 인생’을 선고받자, 남은 삶을 비롯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전부 하나님께 바치고 싶었다”며 “그날 딸과 함께 방바닥에 통장과 진단서, 집 임대계약서 등 가진 것을 모두 펼쳐놓고 눈물로 기도했다”고 말했다.

무작정 헝가리로 떠난 모녀는 소속 없이 봉사하다, 현재는 예장백석 소속인 경기도 양주 새빛교회(백재현 목사)에서 파송을 받아 현지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태권도 교실과 한국어 교실 운영 등 사역은 물론 2019년 5월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때는 한국인 탑승객을 위해 헬기를 타고 통역 봉사를 하기도 했다.

박 선교사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홀로 딸을 낳고 싱글맘이 되니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서방 대신 열방을 주셨다”며 “제 이야기를 통해 더욱 많은 분들이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글·사진=조승현 기자 cho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