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선교 발자취 위로 순례자의 묵상이 피어나다

입력 2025-03-20 05:03
그리스 테살로니키의 구시가지를 둘러싼 ‘테오도시우스 성벽’ 앞에서 지난 15일 미국 순례객들이 데살로니가서를 묵상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북아프리카 지역을 제외한 로마 제국의 주요 도시에서 복음을 전파했다. 최소 1만4000㎞에서 최대 2만㎞에 이르는 거리를 다닌 것으로 추정된다. 바울의 선교 여행은 신약성서에 생생하게 담겨있다. 신약성경 27권 중 13권에 달하는 그의 서신서들은 초대교회사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국민일보는 지난 15~16일 바울과 초대교회의 선교 발자취가 남아있는 그리스 테살로니키와 베뢰아를 방문했다.

그리스 테살로니키 국제공항에서 서쪽으로 20분 정도 차량으로 이동하자 에게해 세르마이코만을 마주한 테살로니키 구시가지가 나왔다.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웅장한 성벽은 군데군데 무너진 곳도 있지만 대체로 외형을 유지하고 있다. 돌과 벽돌로 튼튼하게 높이 쌓은 성벽 바깥으로 테살로니키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데살로니가서 묵상하며 선교 되새겨

구시가지를 둘러싼 ‘테오도시우스 성벽’ 앞에서 보기 드문 일행을 만났다. 22명의 미국 순례팀들이 흩어져 이 지역을 배경으로 기록된 데살로니가서를 묵상하고 있었다. 서서 깊은 생각에 빠지거나 먼 해변을 바라보며 눈을 지그시 감는 등 저마다 묵상 방식은 달랐다. 지난 15일 기자와 동행한 김수길 그리스 선교사는 “테살로니키에서 30년 가까이 사역하고 있는데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며 반가워했다.

AD 382년 외세의 침입 방어를 위해 이 성벽을 만든 이는 로마 제국의 50대 황제인 테오도시우스 1세다. 그는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칙령하며 기독교를 부흥시킨 인물이다. 바울이 선교 여정으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 데살로니가는 5만여명이 거주하는 도시였다. 바울은 습관에 따라 유대교 회당에서 복음을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행 17:1~2)

김 선교사는 “테오도시우스의 기독교 칙령은 이곳에서 바울이 복음을 뿌린지 약 320년 뒤 복음의 씨앗이 맺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바울의 설교 장소, 비마

그리스 베뢰아의 순례지로 꼽히는 '사도 바울의 강단' 옆 모자이크 작품.

테살로니키에서 남쪽으로 65㎞ 떨어진 베뢰아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을 피해 말씀을 전한 지역이다. 베뢰아인들은 데살로니가인들보다 너그러웠고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상고했다.

베뢰아에서 가장 먼저 둘러본 곳은 바울이 베뢰아인들에게 말씀을 가르친 ‘사도 바울의 강단(비마)’이 있는 장소였다. 비마는 베뢰아 순례객들이 몰리는 곳으로 최근 바울의 동상이 세워졌다. 순례객들은 바울의 전신 동상뿐 아니라 세 부분으로 구성된 화려한 모자이크 벽화 앞에서 연신 기념촬영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가운데 벽화는 바울이 말씀 전하는 모습을 형상화했으며 오른쪽 벽화는 바울과 베뢰아인들의 모습, 왼쪽 벽화는 ‘와서 우리를 도우라’(행 16:6~10)는 환상 가운데 마케도니아 선교를 촉구한 천사와 바울의 모습을 화려한 색감으로 표현했다.

민족의 고난 역사 기억하는 유대인

바울이 이곳을 방문할 당시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던 만큼 그가 유대교 회당에서 설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베뢰아에는 유대교 회당이 보존돼 있으며 유대인과 순례객이 단기로 머무르는 숙소들이 즐비했다. 유대교 회당 안과 집 외곽에는 시편 137편 5절 등 성경 구절이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울 시대에 많은 유대인이 그리스에 살았는데 1492년 이베리아반도에서 나스르 왕조를 멸망시키며 영토 회복을 이룬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이사벨 1세가 회교도뿐 아니라 많은 유대인을 이베리아반도에서 추방한다. 이때 추방된 많은 유대인이 테살로니키와 이곳 유대인 거주 지역에 몰려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돌프 히틀러와 그를 추종하는 나치는 베뢰아에 있는 대부분 유대인을 폴란드의 수용소로 보내 살해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선교사는 “이곳에는 유대인의 애잔한 역사가 담겨있다”며 “유대인들은 과거 민족이 겪은 고난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한다. 이렇게 노력하는 이들의 의식이 살아있는 동안 베뢰아는 영원히 신사적인 사람들의 도시일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행 17:11~12)

테살로니키·베뢰아(그리스)=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