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으로 시작된 대통령 탄핵 과정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나 하나 잘살자고 사회 전체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이들의 몰염치, 파렴치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집권당을 소수로 만든 국민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몽니만 부리더니, 용인돼서는 안 될 집단과 손을 잡고 파시즘적 폭력을 방관하면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소수의견을 외면하고 전횡이라 할 만큼 독선적인 행태를 보인 다수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정치, 권력 남용, 극단적 개인 이익 추구의 결과물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가 극우 포퓰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이탈리아 최고 지성인 중 한 명인 미켈라 무르자가 ‘파시스트 되는 법’(2018)을 출간했다. 무르자는 “파시즘은 충분히 감시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오염시키는 속성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적을 만들어라(비판세력 탄압), 기억을 다시 써라(가짜뉴스 유포),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말하라(차별, 배제로 낙인찍기)로 파시즘의 확대 방법을 설명했다. 이번 정부 출범 초기 이런 징후를 포착한 일부 지식인들은 파시즘 확산을 경고했다. 하지만 남의 나라 일처럼 방관했고 ‘설마’라며 안일하게 생각했다.
삼척동자도 예상할 수 있듯, 대통령 탄핵 심판주문이 나오는 순간 우리 사회는 극심한 혼란 속에 빠질 게 자명하다. 정치인들은 광장을 기웃거릴 때가 아니다. 2차대전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는 나치즘, 파시즘 해결을 위해 철저한 개혁을 단행했다. 독일은 기본법을 제정해 민주적 가치를 강화했다. 연방헌법재판소를 만들어 헌법 수호 의지를 확실히 했다. 강력한 삼권분립 체계를 확립하고,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보장토록 했다. 독재와 전체주의로의 회귀를 막기 위해 극단주의 정당의 활동을 제한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정치 대립을 완화하기 위해 의회의 협치 구조를 강화하고 특정 정당이 단독집권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미흡한 면은 있지만 전범과 부역자들을 끝까지 찾아내 처벌했다.
프랑스 제4공화국(1946~1958년)은 의원내각제였다. 다당제 체제에서 정당 간 이견으로 연립정부 유지가 어려웠다. 12년 동안 21명의 총리가 교체될 정도였다. 알제리 식민지 문제와 경제 불안정으로 효과적인 정책을 추진하지도 못했다. 프랑스는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을 분산시켜 분권형 대통령제, 이원정부제로 전환하는 제5공화국 체제를 출범시켜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대통령의 권한이 강화되자 견제를 위해 임기를 줄이고 특권을 제한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그러나 여전히 대통령의 권력 독점을 제어하지 못하고, 의회 권력을 회복시키지 못해 개헌 등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독일은 정당 내부 구조도 바꿨다. 정당 민주주의를 보장하기 위해 당원들이 실질적으로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했다. 국민이 직접정치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확대하는 방법을 마련한 나라도 있다. 스위스는 중요 정책을 국민이 직접 투표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다 알고 있는 얘기를 길게 복기한 이유는 지금이 정치제도와 권력구조 개편, 사회 개혁의 적기이기 때문이다. ‘87체제’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나온 지 오래고, 대안도 많이 제시돼 있다. 결단만 하면 된다. 유불리를 따져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한다면 더 힘든 시기를 거쳐야 할 수도 있다. 현 정부의 남은 2년, 다음 정부의 5년은 긴 시간이 아니다. 정부가 유지되든 바뀌든 다시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게 되면 과도정부라는 생각으로 가장 먼저 사회 전반의 변화를 준비하길 기대한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