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교사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주님을 뜨겁게 만나고 결단했습니다. “제 인생의 황금기 3년을 주님을 위해 선교지에서 헌신하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학업과 가정을 이루는 동안 그 다짐은 희미해졌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던 중 마음속에 울림이 찾아왔습니다. “너의 황금기 3년은 도대체 언제 오느냐.” 그는 다시 결단했습니다. “이제 미루지 않겠습니다. 지금부터 3년을 선교에 헌신하겠습니다.” 그러자 다시 음성이 들렸습니다. “3년을 드린다니 귀한 일이구나. 그런데 그 3년은 누가 정한 것이냐.” 그는 다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 3년뿐 아니라 남은 삶 전부를 선교적 삶으로 드리겠습니다.”
많은 분이 뜨거운 은혜를 경험하지만, 그 은혜가 오늘의 것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헌신하겠다고 하지만 그 ‘언젠가’는 종종 오지 않습니다. 신앙은 과거의 기억만도 막연한 미래의 다짐만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입니다. 오늘 나의 신앙이 과거보다 식었다고 주저할 이유는 없습니다. 주님은 오늘의 내 삶을 원하시고 지금의 나를 부르고 계십니다. 헌신은 순간이 아니라 평생 이어지는 여정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17) 만약 주님이 과거형으로 물으셨다면 베드로는 대답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주님을 저주하며 부인했던 기억이 그를 짓눌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물으셨습니다. “네가 지금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께 중요한 것은 과거의 잘못이 아니라 오늘의 결단이었습니다. 이는 베드로를 향한 사랑이 어제도 내일도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도 여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교회가 첫사랑을 잃어 책망을 받았지만(계 2:4) 주님의 책망은 포기가 아니라 회복을 위한 초대였습니다. ‘마가라 하는 요한’을 떠올려 보십시오.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여정에 동참했으나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그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는 심한 다툼을 겪었습니다.(행 15:37~39) 그러나 하나님은 마가 요한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후 그는 바울의 동역자가 됐고(몬 1:24) 베드로의 영적 아들이 됐으며(벧전 5:13) 마가복음의 저자가 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한국교회는 140년의 선교 역사를 걸어왔습니다. 선교적 교회라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성도들은 곳곳에서 헌신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주님의 질문이 다시 울립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교회가 아무리 선교에 앞장서도 개인이 응답하지 않으면 그 역사는 나와 무관한 일이 됩니다. 반대로 모두가 주저할지라도 내가 응답한다면 부흥은 나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오늘이 바로 내 삶의 황금기입니다. 내 자리에서 내 시간 속에서 주님의 뜻을 구하는 삶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첫사랑을 넘어 더욱 뜨거운 헌신으로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주님이 시작하셨기에 끝까지 우리의 삶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현실과 부딪힐 때 우리는 망설이거나 주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언제나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십니다. 실패와 좌절이 신앙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이 주님을 만나는 과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선교는 특별한 사람들만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 역시 선교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선교적 헌신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듯 우리도 다시 일어나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어제의 실패가 오늘의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일을 기약하며 미루는 신앙이 아니라 지금 당장 순종하는 신앙을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손길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며, 다시 시작할 용기와 힘을 주실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새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