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각자도생의 시대, 탄소중립의 길은

입력 2025-03-20 00:32

파리기후협약 탈퇴한 미국
기후대응 위축 뚜렷해진 EU
패권 위해 기술 주도하는 중국

각국 입장 극명히 갈라지며
글로벌 기후협력 도전에 직면

2035년 NDC 목표 제안 앞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980년대에 풍자와 익살로 시대를 풍미한 코미디언 이주일이 있었다. 젊은 세대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그의 유행어처럼 거침없는 독설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집권 후 ‘뭔가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이 급변하고 있다. 전쟁 조기 종식을 주장하며 볼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의 관계 축소 및 캐나다·멕시코와의 관세 갈등 격화 등 우방국과의 긴장을 높이고 있다. 취임 직후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고, 친환경 에너지 규제를 완화하며 전기차 관련 기후정책을 철회하는 등 환경 정책도 급격히 변경했다.

유럽연합(EU) 역시 정치·경제·안보 불안정 속에서 기후대응이 위축되고 있다.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선 기후정책의 보수화 경향이 뚜렷해졌다. 반면 중국은 신재생에너지 분야 기술 발전과 시장 확대를 주도하며, 기후위기 대응을 새 경제질서 구축의 기회로 삼아 패권경쟁을 가속화하고 있다. 따라서 파리기후협약 기반 글로벌 기후협력은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각국 입장이 극명히 갈리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어떤 방향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대한민국은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과 2035 NDC 목표 제안을 앞두고 국제 기후협력의 지속성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주요 수출기업들은 RE100(재생에너지 100% 전환) 준수를 요구받고 있으며,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 등으로 인해 탄소 규제가 기업 경쟁력과 수출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탄소중립 전환은 단순한 환경 이슈를 넘어 경제·산업 경쟁력의 핵심 과제가 됐다.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은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에너지 절약이며, 이를 위해 산업과 사회 전반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경직된 전기요금 체계가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불합리하게 책정된 고정 요금은 에너지 과소비를 유발하고, 신재생에너지 및 친환경 기술 개발을 저해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분산에너지법이 입법 취지에 맞게 시행돼야 하며, 지역 맞춤형 전력요금제 도입, 분산형 전원 확대, 스마트그리드 활성화가 필요하다. 제도 개선 없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전력시장 구조개혁도 필수다. 현재 한국은 배전·판매 부문이 개방되지 않은 채 탄소중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폐쇄적 구조에서 재생에너지 산업은 성장하기 어렵다. 시장을 개방해 사업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도록 해야 경쟁을 촉진하고 전력 수급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변화는 불안을 동반하지만 외면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다.

산업과 사회 전반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또 하나의 방법은 인공지능(AI) 기술을 적극 도입하는 것이다. 챗GPT 같은 파운데이션 모델이 등장한 지 불과 2년 만에 AI는 엄청난 영향을 미쳤으며, 탄소중립 전환에도 필수적 요소가 되고 있다. AI가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산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기존 산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AI 기반 스마트 에너지관리, 공정 최적화, 탄소 배출 모니터링 등을 활용하면 산업 전반에서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고 온실가스를 효과적으로 감축할 수 있다.

AI는 단순한 감축 수단을 넘어 산업 혁신과 경제성장의 핵심 동력이자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가 AI 대전환을 위한 법·제도를 정비하고, 인프라 구축에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전기요금 제도 개선과 전력 산업의 혁신 없이는 AI 도입 효과를 극대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강대국들의 자국 우선주의로 국제 공조가 약화되고 기후위기 대응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사라지지 않으며, 대응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탄소중립 전환을 위해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내부 분열이 심할 때 사회가 쉽게 와해됐다. 탄소중립 논쟁이 이념 대립과 기득권 싸움으로 번지면 시간만 낭비된다.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무엇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지 신중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제용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