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잠룡’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이 18일 보수 텃밭인 대구·경북(TK)을 나란히 찾았다. 탄핵 반대 여론이 우세한 TK는 ‘찬탄’(탄핵 찬성) 정치인들에겐 험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배신자 프레임’ 공세를 받고 있는 두 사람이 취약점으로 꼽히는 보수 지지층 확장에 부심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전 대표는 대구 북구 경북대에서 청년 토크쇼에 참석했다. 행사 시작 전 경북대 앞에서는 한 전 대표 지지자들과 윤 대통령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이 서로 고성을 지르며 대치하기도 했다. 한 전 대표는 강연에서 “대구에서 저를 맞아주는 게 어렵다는 걸 안다”고 했고, 행사 뒤에도 “저에 대해 비판할 점을 비판해주면 잘 경청하겠다”고 자세를 낮췄다.
한 전 대표는 지역기자 간담회에서는 12·3 비상계엄을 위헌·위법으로 규정했던 것을 두고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생각했다”며 “다시 돌아가도 계엄은 막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분들께는 그때도 죄송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같은 마음”이라며 “정말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탄핵은 불가피하다’고 했던 한 전 대표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인용 여부에 대해선 “중요한 헌재 결정을 앞두고 전망을 내놓는 건 적절치 않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헌법 정신과 헌법 가치에 맞는 결정을 내려주길 기대한다”고 했다. 또 TK에서 탄핵 반대 여론이 높은 것에는 “(탄핵을 반대하는) 그분들 마음을 이해하고 애국심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대구시당 기자 간담회에서 정치 행보에 최대 족쇄가 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오랜 갈등에 대해 “언젠가는 해소하고 싶다는 바람은 마음속으로 늘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간적으로 좀 화해를 하고 서운한 게 있었다면 서로 얘기도 하는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 전 의원은 다만 배신자로 지목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정면돌파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경북 경산 영남대 특강 이후 기자들과 만나 “제 양심을 지키고 정치를 해온 대가라고 생각한다”며 “저는 지금 와서 말을 바꾸고 현실과 타협하고 그럴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구·경북 시·도민들도 그 문제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저를 평가하고, 그래도 싫어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 코어층’을 겨냥한 이들의 행보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여당 재선 의원은 “조기 대선이 현실화한다면 골수 보수층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이길 수 있는 사람에게 전략적으로 표를 주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다른 한 영남권 의원은 “TK에서 탄핵 찬성파를 여권 대선 후보로 택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느냐”며 “보수 확장이 우선이고, 이미 늦은 감이 많다”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대구=이강민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