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산업 스파이로 민감 국가 지정된 한국, 총력대응 절실하다

입력 2025-03-19 01:30
조셉 윤 주한미국대사대리가 18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초청 특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 국가로 지정하게 된 배경에 산하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에서 한국 계약직 직원이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반출하려다 적발됐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첨단 기술 유출에 민감한 시기에 동맹국 한국에서 관련 사안이 불거진 것만으로도 양국의 첨단 산업 협력에 깊은 불신을 초래함은 물론 자칫 한·미동맹에 균열을 키우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 정부가 이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작 미국 측은 한국 연구자들의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 출장이나 공동연구 과정에서 보안 규정을 위반한 사례들이 누적돼 ‘민감 국가’ 지정에 이르렀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언론 보도가 나온 뒤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급하게 대응에 나섰다. 지금은 냉정하게 상황을 직시하고, 근본 원인을 정확히 밝혀내야 할 때다.

어제 조셉 윤 주한 미대사 대리가 “민감 국가 지정이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의 보안문제에 따른 것일 뿐”이라며 양국 산업 협력엔 문제가 없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대사라는 직무의 특성상 주재국에 대한 외교적 수사임을 감안한다면 이 사건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섣불리 치부해서는 안 된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과 미국 간 에너지 협력이 소형 모듈 원자로(SMR)를 포함한 원자력 분야에서 빠르게 진전돼 왔다. 이런 상황에서 ‘민감 국가’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미국 내 정부 기관은 물론 민간 연구소들까지 어떤 식으로든 한국과의 협력을 꺼릴 빌미가 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과 맞물려 향후 경제·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이 곧 방미해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과 면담할 예정이라고 한다. 외교 당국도 수수방관하지 말고 해당 기술 유출 사건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알 수 없는 만큼, 신뢰 회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 측에 한국의 철저한 조사를 통한 재발 방지 대책을 신속히 전달하고, 신뢰 회복을 위한 투명한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갈등만 벌인다면, 한국은 동맹국이 아닌 요주의 국가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도 한·미 간 소통 채널을 굳건히 유지하고, 국가 안보와 경제를 지키기 위한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