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다이소에서 비타민을 살 권리

입력 2025-03-19 00:50

다이소 3000원 비타민에
약사 반발, 공정위 조사 착수

판단은 소비자 결정에 맡겨야
이미 제품 비교 분석 공유돼

편의점도 건기식 유통 준비
선택지 많아지면 환영할 일

요즘은 ‘스세권’이 아니라 ‘다세권’이라고 한다. 걸어서 스타벅스에 갈 수 있는 생활권을 최고로 여기던 때가 있었지만 달라졌다. 건물주가 가장 좋아하던 스타벅스의 지위는 다이소가 넘겨받았다. 균일가 생활용품 판매점 다이소의 인기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다이소 증후군’이라는 말도 있다. 근처에 다이소가 있으면 습관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들어가 매장을 배회하는 현상이다.

주머니가 얇은 사회 초년생에겐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며 ‘탕진잼’(소소하게 탕진하는 재미)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인기를 반영하듯 다이소의 매출은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는 4조원을 넘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최근 다이소에서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월 24일 전국 다이소 200여개 매장에 건기식이 등장했다. 일양약품 대웅제약 등 대형 제약사에서 나온 30여종의 영양제가 나오자마자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치 비타민 등 영양제가 3000원, 5000원이기 때문이다. 같은 회사 영양제가 약국에서는 2만~3만원에 팔리니 최대 10분의 1 가격인 셈이다. 그러자 약사들이 반발했다. 당장 다이소에서 물건을 빼지 않으면 약국에서 해당 제약사 제품을 철수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일양약품은 다이소 입점 닷새 만에 백기를 들었고, 대웅제약과 3월에 입점한 종근당건강은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작년에도 동성제약이 다이소에서 저렴한 염색약을 판매했다가 약사들의 반발로 제품 출하를 중단한 일이 있다.

이번엔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섰다. 공정위는 지난 13일 일양약품이 다이소에서 물건을 철수하는 과정에서 대한약사회의 ‘갑질’이 있었는지 본격 조사에 나섰다. 공정거래법 제45조에 따르면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서 상대방의 사업 활동을 부당하게 구속해서는 안 된다.

다이소에서 파는 비타민은 약국에서 파는 것과 다르다. 기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성분은 과감히 줄이고 제품 포장을 달리해 가격 거품을 뺐다는 게 제약회사들의 설명이다. 약사들은 소비자들이 동일 제품이라고 오인해 약국에서 폭리를 취한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이라는데, 3만원짜리와 3000원짜리가 동일 제품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소비자는 어리석지 않다. 어떤 게 좋을지는 소비자가 판단할 몫이다. 이미 온라인에서는 같은 제약사에서 나온 다이소 영양제와 약국 영양제의 함량을 비교·분석한 게시물 등이 공유되고 있다. 가격과 품질을 충분히 따져가며 구매할 정도로 우리 소비자의 수준은 높다.

품질과 안전성에 문제가 있지 않는 한 약사들이 다이소 판매를 막을 권리는 없다. 다만 다이소 영양제에 보완할 부분은 있다. 이를테면 성분·함량 표시와 함께 1일 영양성분 기준치를 같이 표기하는 게 좋겠다. 약국 영양제에 비해 성분을 줄였다는데 제품에 표기된 1일 섭취량으로 1일 영양성분 기준치를 얼마나 채울 수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약사단체의 갑질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2012년 보건복지부가 24시간 편의점에서 해열제 소화제 등 안전상비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을 때도 약사들은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우려했던 오남용 문제는 거의 없었고 소비자의 만족도는 높았다.

고령인구 증가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건기식 시장은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매출 규모는 6조440억원. 이 중 70%의 매출이 온라인에서 이뤄진다. 오프라인에서도 약국이 일등이 아니다. 대형할인점, 다단계에 이어 약국에서 판매되는 비율은 4.2%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약사들이 들고일어나 다이소에서 물건을 빼라고 하는 것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다이소뿐 아니라 편의점도 건기식 판매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다이소는 가격 경쟁력, 편의점은 소포장과 접근 편의성 등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유통 경쟁이 치열해지면 소비자의 선택지가 넓어질 테니 환영할 일이다. 합리적인 가격에 품질 좋은 제품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판매 경로가 다양해질수록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공정위 등 감독 기관의 책임도 더 요구된다. 어느 곳에서 팔리든 먹는 것이기에 안전성 확보가 우선이다. 경쟁은 공정하게, 결과는 시장에 맡기자. 소비자는 다이소에서 비타민을 살 권리가 있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